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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훌륭한 보통 사람

 

 

 

일전에 시인이신 은사님과 함께 했던 식사 모임에서 의정부 화재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더랬다. 맨몸으로 시민들을 구조한 간판 시공업자의 일화는 확실히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에 대해 한층 예민해진 사람들에게 일말의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초자연적인 영웅들을 그린 만화들은 저런 숨어있던 익명의 능력자를 목격한 창작자들에 의해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훨씬 더 깊은 불안과 걱정에 마주치기도 한다. 만일 우리 사회가 상시적인 안전 체계보다 보통 이상의 헌신도와 선의를 가진 익명의 훌륭한 보통 사람, 평소에는 뿔테 안경을 끼고 다니다가 위험 상황에서는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클라크 같은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잠재적인 우리 중 누군가에게 잔인한 임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슈퍼 영웅을 그린 영화와 만화들은 실은 사회가 공공 체계가 아니라 이런 숨은 영웅들 덕분에 그런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풍자적인 세계관을 은밀히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뉴스를 접하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처럼, 평범한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위급상황에서는 선할 뿐 아니라 강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고, 어쩌면 인류의 1퍼센트쯤은 그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마치 사회의 구조적인 빈곤 문제가 개인이나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다소 단순하고 무책임한 일인 것도 같다. 애초에 값싸고 빠른 것이 효율적이라는 근시안적인 착각이, 불가피한 재난의 가능성을 부인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효율과 탐욕을 혼동한 시공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재난을 소수의 잠재적인 영웅에게 수습해주기를 부탁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을까. 공공 체계에 있어서라면, 현장과 행정 사이의 깊은 간극이 또한 문제로 도사리고 있다.

 

불 끄는 남편은 야근이 끝나고 부족한 잠을 벌충한다. 현장에 나갔던 날이면 늘 연기 냄새가 난다. ()

 

-<매일경제> 매경춘추, 201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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