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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쌀독 밖으로 나오는 바구미

급하더라도, 대강 하지 말자. 너무 빨리 읽으면 사상은 자라지 않는다. 자라지 않은 사상에서 흘러나오는 과거의 말들로는 그렇고 그런 상식 수준의 생각들 말고는 만들어낼 수 없다. 아니, 그것은 만들어진 것조차도 아니며 재활용되지 못한 재활용품 수거함 속의 냄새나는 빈 페트병 같은 것밖에는 안 된다. 그것을 가공하여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깊은 성찰과 사상이다.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재료를 추출해내기라도 해야 한다. 

위로가 되는 것은 내 말을 알아듣는 벗과 좋은 책이고, 이들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내가 감히 인류의 벗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사는 현실의 세계에서 나와 어깨를 부딛치는 것은 '인류'가 아니라 무수한 '원수 같은 이웃들'---개별자들. 이 사실을 잊지 않되, 그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들지 않도록 하자. 명심하자.

책을 가지러 학교에 들렀더니 연구실에는 발표를 앞둔 사람들이 쌀독 속의 바구미떼처럼 책상 앞에 바싹 붙어 앉아 노트북에 머리를 처박고 키보드를 두드려대고 있었다.---그 광경이 어찌나 오싹하던지!

연구실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출석 체크를 하든 쫓아내든 마음대로 해라.---지옥이다. 지독한 낭비와 독기가 쏟아져나오는 지옥.  

나는 더, 더, 더 고독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