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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무덤 속에서 자라는 머리카락

#1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든 사상 가운데 가장 축복 받은 이 사상을 취하여 그처럼 허송세월하고 있는 이 비참, 인간은 각기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거나 군중에 관해서 얘기한다면, 인생의 연극에 있어서는 군중을 힘으로 사용하면서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으나 결코 이 축복만은 기억나게 하지 못하는 이 비참, 즉 군중이 개개인으로 분리되고, 그것에 의하여 각 개인이 최고이고 또 유일한 것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로 인하여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이 되며 그 안에서 사는 것은 영원도 결코 길 수는 없는데, 그와 반대로 인간이 기계처럼 사용되기 위하여 군중으로서 긁어모이고 있는 이 비참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울어도 충분하지 않다.

-키르케고르(1849), 죽음에 이르는 병

 

2012년 성탄절을 이틀 앞둔 일요일, 시종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지하 성전의 저녁 미사 시간, ‘주의 기도를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외고 있을 때, 어디선가 끅끅거리는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구절에서부터였고,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이 울음소리는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신음 같은 울음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 군 자신의 목구멍에서부터 비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가족은 그가 내내 갑작스런 기침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 5년 간 줄곧 총체적인 분노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토록 슬픈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컴컴하고 어두운 파도가 계속해서 덮쳐왔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은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사제는 강론 내내 무언가 위로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문장은 언제나 떨리는 종결어미를 동반하고 있었다. 사제 자신도 자기의 입이 하는 위로의 말을 아직 채 믿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곧 성탄절이었는데도, 그에게는 지난봄에 시작된 수난 주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난일의 군중에 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매혹적인 인물을 발견하면 앞 다투어 사랑을 고백하고, 그의 눈동자에 자신을 각인시키려 하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춘 다음, 그를 팔아버리고, 속옷을 강제로 벗겨버린다. 반드시, 입을 맞춘 자가 배신한다. 입을 맞춘 자만이 배신할 수 있다. 배신의 가능성, 그것만이 역설적으로 사랑을 반증할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군중과 전날의 군중은 동일한 군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완전히 동일한 군중일 수도 있다. 애정은 쉽게 증오로 변하니까.

그는 배신자를 이해했다. 참담한 피식민자들인 군중을 이해했다. 새로운 희망을 줄 줄 알았던 그 남자는 어이없게도 지나치게 비폭력적이고 비정치적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대고 있었지 않았나. 민족주의 정통 세력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두개파나 바리사이파에 합류하여 낡은 조직을 쇄신하거나 제국과 협상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았고, 신당을 창당하지도 않았다. 그 남자는 오히려 느긋하게 느슨한 보헤미안들의 연대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건 거의 자연발생적인 모임 같았다. 사람들은 슬슬 좌절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새날은 도대체 언제 오는가? 이 참람된 식민지의 나날은 언제 끝장이 나는가? 황제가 부과하는 터무니없이 높은 세율을 낮출 방도는 없는가? 우리 가난한 자들의 등골을 이렇게 빼먹고 있는데도? 어째서 당신은 수수께끼 같은 비유만을 사용해서 추상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가? 우리가 언제까지 당신의 희망 고문을 견뎌야 하는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사랑 받던 이 남자는 바로 그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먼저 배신당했다고 느낀 것은 군중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성을 잃은 군중 앞에서 망설이던 식민지의 총독도 이해했다. 총독은, 그저 제국의 대리인이었고, 전복을 시도하지도 않은, 심지어 성정도 그리 난폭해 보이지 않는, 단지 약간 괴짜 같은 사소한 정치범에게 사소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내리려는 피고인의 동포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절망한 군중의 분노가 자신에게 쏠리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황제에게 그런 일을 보고한다면 황제는 격노할 것이다. 그 전에 총독 자신이 먼저 분노한 군중 사이에서 찢겨 죽지 않는다면.

광장에 모인 압도적인 다수에 의해, 이 사법 살인은 완전히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총독은 감형을 고려했지만, 군중은 이 남자를 기필코 죽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 알면서 자진해서 자신을 조롱거리로 내어놓은 그 남자였다. 그만이 유일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언젠가 역사가 자신의 죽음의 불가해한 성격을 거듭 되새기면서도 이런 사건을 재차 삼차 반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정말?) 이 남자가,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대세를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은 것이, 그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 될 것만 같았다.

폭력과 공희제를 양껏 관람한 군중은 실컷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고 벌벌 떨리는 손을 애써 모으고 잠들어 다음 날 아침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민지의 일터로 나갔겠지. 아무렴, 점심시간 즈음엔 무언가 가슴에 켕기는 느낌 같은 것이 찾아왔을 수도 있지만, 제국의 통치를 전복하려는 공안 사범으로 몰리기 전에 노동에 전념하는 편이 상책이었을 것이다. 오후 근무 시간엔 종종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야, 추레한 옷을 입고 다니는 주제에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양 일신의 안녕 따위는 추호도 관심이 없는 듯 했던 그의 눈빛은 나의 삶을 조롱하고 있었어.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어째서 그렇게 당당한 거지? 그런 자가 입만 살아가지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혼란을 조장하는 꼴은 내 못 보지. 벌어 먹여야 할 자식새끼가 몇인데. 우리 아들들이 그런 자한테 휩쓸려서 허랑한 백수 집단에 합류하기라도 했더라면, 에구구, 가슴이 다 벌렁거리는구먼. 결국은 잘 된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는 자기를 포함한 사람들을 더욱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모두 다 한꺼번에 이해할 것 같았다. 그 남자를 이해하는 것은 끔찍했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도 끔찍했다. 이 느낌이 쉴 새 없이 두려웠다.

 

 

#2 자본론과 소녀시대

 

그러나 자신의 분별을 잃고, 동시에 오성(悟性)을 중개인으로 하는 유한성(有限性) 전체를 잃고, 그러고 나서도 부조리한 것의 힘으로써, 바로 똑같은 그 유한성을 다시 획득할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이 나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든다.

키르케고르(1843), 공포와 전율

 

새해가 밝자 정 군은, 에라, 모르겠다, 모든 친구들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50여 년 전에 어느 시인이 썼듯이,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김수영, 전향기)인데, 하물며 보릿고개도 없는 이런 시절에랴.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이 모인 신년회에 나가 조금씩 술을 마셨다. 정 군의 친구 유 군은 카뮈와 바타이유를 사랑했지만, IMF 직후였던 15년 전에 유나바머 선언문을 읽고는 대학 졸업을 두 달 앞두고 자퇴했다. 지금은 옛 구로공단 앞 만두가게에 고용되어 오후부터 자정까지 만두를 팔고 이 동네를 배회하는 김태희라는 별명의 신들린 여자 거지에게 매일 만두와 떡볶이를 사주고 있다. 얼마 안 되는 남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린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유 군의 친구들은 영화계 주변에서 종사하며 청춘을 바친 터였다. 그날 정 군이 처음 만난, 전 형이 말했다. , 요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했어.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 늬들은 IQ 75의 설움을 모른다. 분명히 앞장을 읽고 넘겼는데 뭘 읽었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다시 읽는 거야. 그걸 열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그렇게 내가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만 둘 수가 없어.

뭐가 그렇게 아름다운데? 시나리오를 쓰는 배 형이 물었다.

우선은 우정이. 가난한 평생의 친구가 악필의 원고를 다 못 마치고 죽었는데, 엥겔스는 친구의 책을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하잖아. 게다가 어떻게, 자기는 가난해서 밥걱정부터 해야 할 처지에, 도대체 어떻게,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을 구분할 생각을 한 거지? 그 사실을 생각하면 아름다움으로 가슴이 미어져. 그건……, 그 아름다운 생각의 배후는......, 자유일 거야. 밥걱정을 하는 대신 쌀이 생기는 과정을 생각한다는 거. 내 자유를 완성하는 거, 그게 내 필생의 목표야.

자유가 뭔데요? 유 군이 물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가 자연스럽게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 행동이 과녁에 적중하는 거지. 내게 자연스러운 행동이, 항상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행동과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도, 반드시 그 자리에 꽂혀야 할 화살이, 정확하게 그 자리에 꽂히는 거야. 그거. 그게 자유야.

전 형은 언젠가 생길 미래의 가족을 위해 쪽팔리게 그라지쫌 말자라는 가훈까지 만들어놓았다고 했다. 전 형은 천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정 군은 그의 겸손한 화법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그들은 얼큰해졌다. 얼큰해진 전 형이 정 군에게 말했다. 시 쓰신다면서요. 요즘 시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위로가 되는 시를 좀 써 주세요. 소녀시대, 소녀시대는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요즘 시는 위로가 안 돼요.

위로요? 정 군이 반문했다. 소녀시대 같은 위로요? , 잘 빠졌네, , 노래 잘 하네, , 춤 잘 추네, 그리고선 다음날 다시 노동의 바다에 다이빙할 힘을 주는 그런 위로 말이에요? 시의 핵심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는 사후적인 우연한 효과의 하나일 뿐이에요. 시의 장기는 갈등을 벌려놓는 일입니다.

정 군은, 의외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군요.

전 형이 원하는 것은 소녀시대일까, 자본론일까, 소녀시대와 자본론의 행복한 동거일까. 전 형은 바보일지도 모른다. 쉽게 감동하는 게 아니었어. 정 군은 그때 좀 흥분했던 것이 틀림없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의식화 당해 본 적 없이 스스로를 의식화하기 시작한 전 형이, 그런 달달한 것을 원해도 되는 것일까?

그들은 배 형의 집에 몰려 가 편의점에서 산 백화수복과 부엌 찬장의 포도주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와 스트링 치즈와 여러 개의 귤알을 작살내고 좋아하는 음악들을 돌려 들었다. 반드시 제 손으로 요리한 음식을 친구들에게 먹이고 싶었던 배 형은, 비틀거리며 소시지와 양파를 볶았다. 각자 자기 마음속의 이불장에서 울다 잠든 어린아이를 꺼내어 흔쾌히 어울려 놀게 했다. 눈 쌓인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면 깨질 듯 별들이 쏟아졌다. 이 순한 사람들의 미학적인 유토피아, 일시적인 낙원에서 그들은 무엇 하나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곤 없었는데, 우리는

아픈가? 어디가? 우리 중 날이 새면 출근하는 사람은 몇인가?

집 주인과 유 군이 잠들고 나자 나머지는 불콰한 채로 귀갓길에 나섰다. 전 형은 끝끝내 택시비를 챙겨 주고는 아직 컴컴한 겨울 새벽의 차가운 대기 속을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택시 안에서 김 형은, 전 형이 청춘을 바친 영화를 작년에 접었으며, 에어컨 기사가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그건, 시인이 절필하는 것만큼이나 엄숙한 일이에요. 겨울에는 고칠 에어컨이 없어서 전 형은 지금 인력시장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절망의 사회적 보편적 계기는 구체적인 자기화의 전조임에 틀림없다. 정 군은 부끄러워서 할 말을 잃었다. 부끄러워해도 좋을까? 소녀시대 같은 위로를 주는 시는 어쩐다지? 전 형에게 위로가 안 되는 시를 써도 되는 걸까? 쪽팔리게 이러지좀 말자.

 

 

#3 쾌활한 김 군의 죽고 싶은 마음

 

나와는 동시대 사람인 버나드 쇼는, 사람이 한 3백 년쯤 살아야 비로소 쓸 만한 일을 하나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으나 나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삶의 조건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오래 산다고 해서 무엇을 이루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938),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2월에 정 군은 김 군을 만났다. 유 군의 친구로 만나 정 군의 친구이기도 한 김 군은 재즈클럽에서 나팔을 분다. 클럽을 전전하는 나팔수의 시급은 시인의 고료처럼 동결된 지 오래다. 주로 자정 넘어 일이 끝나는 관계로, 약속은 새벽에 잡는다. 고기를 불판에 조화롭게 배열하고 타지 않게 뒤집는 일(김 군은 조화와 사각형을 사랑했다), 매일 동료나 친구들과 즐거운 술잔을 나누는 일,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때맞춰 화제를 전환하는 일, 가방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들을 넣어놓고 짬짬이 읽는 일이 김 군의 낙이다. 완강한 무신론자이자 과학 다큐멘터리 애호가인 김 군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 군이 어째서 일요일 저녁이면 지하 성전에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 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신 개념은 보편적 특수들 간의 관계의 알레고리다. 난 인격신을 믿는 게 아니야. 신을 믿는다는 건, 자기 양심을 위무하고 갈등을 떠넘기는 게 아냐. 그런 건 혼자 바위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다. 끝없는 의심을 끝없이 굴리면서 갈등을 자처하는 거라고.

뭔 소리야, 마셔.

정 군은 김 군에게 어째서 도킨스가 보수 기독교의 쌍생아인지 설명하려고 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신을 더욱 더 유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그 유치한 신 개념에 고착되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트위터에서 무신론을 설파하는 도킨스야말로 멍청한 종교인들의 거울상이라고. 신은 말이야, 너하고 나 사이에 있는 거야. 아주 오래됐지만 낡을 수 없는 메타포야. 언제나 그 이름을 초과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굉장히 얇은 신비지만, 그게 없으면 우리는 멸망하는 거야. 유대인 프로이트가 유대교 영웅인 모세를 이집트인이었다고 주장하면서까지 나치의 유대인 말살의 부당함을 고발하려 했을 때, 그는 자기 민족을 수호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배신한 셈이 된 걸까. 그는 민족 종교의 강고한 토대를 뒤집으면서까지 인류의 평등한 일원인 유대 민족을 살리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만이 유일한 질문이야.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너의 음악을 사랑할 때, 네가 사랑하는 건 뭐냐?

너는, , 그런 말들을 하면서 성당 따위에 다니는 거냐? 네 신앙은 신성모독으로 가득 차 있어. 김 군은 고기를 뒤집었다.

김 군은 자기의 부러진 갈비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일전에는 말야, 술 마시고 기분이 잔뜩 좋아져서, 여자 친구랑 모텔에 갔는데, 토요일이라 방이 없는 거야. 그래, 주인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곧 방 나온다고, 겨울비가 막 쏟아지고 있었는데, 처마 밑에서 기다리다 생각해보니 담배가 다 떨어진 거라. 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담배를 사려고 뛰어가다가 미끄러져서 갈비뼈가 깨졌는데 말이지, 그냥 기절을 한 거야. 여자 친구 말로는 한 5분 죽은 듯이 누워 있었대. 그런데 깨어나자마자 든 생각이 뭔지 아냐? , 왜 안 죽고 깨어났지? 그냥 죽었으면 좋았을걸. 웃기지 않냐? 기절하기 직전만 해도 잔뜩 들떠 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

김 군은 클클 웃고선 잔뜩 엄살을 부리면서 자기 갈비뼈를 쓰다듬었다. 그는 쾌활한 김 군의 갈비뼈 아래쪽에서 언제 솟아오를지 모를 검은 간헐천을 상상했다. 주의 기도를 외다 말고 끅끅 올라온 경련도 갈비뼈 밑에서 시작되었을까. 기분 좋은 김 군의 죽고 싶은 마음은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도킨스는 자신의 충실한 독자인 김 군의 갈비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그는 김 군의 기분을 상할까봐 이런 이야기는 당분간 자기 갈비뼈 밑에 묻어두기로 했다.

 

 

#4 모두들 그런 대로 괜찮은 기분이다

 

빠져 있는 세계--존재는 유혹적-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소외적이다.

마르틴 하이데거(1926), 존재와 시간

 

그날 이후로 정 군은 날이면 날마다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과 죽고 싶은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들 기분이 괜찮아보였지만 가끔 혼자 있다 들킨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들이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장악했고, 그들은 괜찮다거나 호통을 치면서 엄마나 아빠의 역할놀이를 하고 있었다. TV를 틀면 힐링캠프안녕하세요-전국고민자랑에서 두께가 조금씩 다른 불행이 눈물 섞인 웃음을 자아냈다. (뉴스는 아직 차마 볼 수 없었다.) 지금의 성공 뒤에 그런 불행이 있었군요, 라든가 지금의 이런 고민이 성공의 밑바탕이 될 겁니다, 따위의 말들이 쏟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어쩐지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계속 되면 새삼 운동을 시작한다거나 새로운 허브 차를 마시고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감에 찬 얼굴로, 난 할 수 있어!, 라고 세 번 외치는 일, 혹은 기쁜 일이 없으면 우선 웃고, 그런 다음 자기 웃음이 자기 얼굴을 지배하기를 기다린다든지 하는 서글픈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기 기분을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일단 남을 용서하는 사람을 보았으며(자동차 범퍼에 붙여놓은 ‘Mea Culpa’ 스티커는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간소화했다), 아무 이유 없이 용서 받아서 모욕감을 느낀 사람이 모욕감을 없애기 위해 갑자기 집에 틀어박혀 대청소를 하고는 반짝이는 유리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광경을 보았다. 여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끝없이 세밀한 취향의 계열화에 따른 찬미였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것은 가치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었다.

그 모든 세심한 기분 관리술은 소마[각주:1]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자살자가 되는 것을 가까스로 방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5 행복의 재구성

 

은총과 유물론은 미덕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우연에 맡긴다.

- 슬라보이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기분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과 자기 기분을 악착 같이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은 표정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정 군은 이런 극단적인 두 가지 예를 유 군이 15년 전에 심취했던 유나바머 선언문의 국역판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5세에 버클리대 종신 교수가 되었다가 2년 만에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몬태나의 두메산골에서 수도와 전기를 비롯한 모든 공공 체계를 거부하고 가로 3m, 세로 3.6m의 자신의 움막에서 20여 년 간 소포폭탄을 만든 천재 수학자 시오도어 존 카진스키, 일명 유나바머, 그리고 그의 희생자중 한 명인 데이비드 겔런터 박사가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나바머는 19936, 예일대학교의 데이비드 겔런터 박사 앞으로 소포폭탄을 보낸다. 겔런터 박사에게 보낸 유나바머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당신은 발전이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은 사람이 늙거나 악천후를 피할 수 없다는 식으로 불가피한 것은 아니오. 발전이 불가피해지는 것은 당신 같은 테크놀로지 광신자들이 그것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에 불과하오.(...)만약 발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당신의 연구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도둑질 역시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도둑놈들도 더 이상 비난할 수가 없게 될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진보와 성장이 불가피한 것이라곤 믿지 않소.”

정 군처럼 융통성이 없는사람은, 카진스키가 사상자를 내지만 않았다면 그를 거의 존경할 뻔했다. 그의 자급자족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은 거의 수도사의 고행과 흡사했으며, 자연 중심의 생활과 신념을 극단적으로 일치시켰다는 점에서 랠프 왈도 에머슨이나 러다이트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안정된 직업, 좋은 집, 단란한 가족, 맛있는 음식, 즉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는 어느 시점에 행복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를 떠나서만 충족될 수 있는 그의 행복의 내용은 고립감이라는 심대한 괴로움을 동반해야만 비로소 그 틀을 얻을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인류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넘쳐나고 있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산업혁명 이후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지나친 산업 발달을 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는 유일한 혈육인 동생에게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고, 그가 소포폭탄을 발송하기 위해 이용했던 동네 우체국의 직원은 고객의 신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FBI의 심문에 함구했으며, 희생자에게 보낸 편지는 짐짓 친구에게 토론을 권유하는 것처럼 은근한 호의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카진스키는 자기 기분 관리를 필요로 하는 통상적인 행복의 개념에 대해 너무나 소홀했기 때문에(그의 선언문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좌파 비판의 요지처럼 지나치게 사회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논리화한 대의를 지렛대 삼아 오갈 데 없는 갈비뼈 아래의 검은 물을 소포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의 죽고 싶은 마음본의 아니게 죽여야만 할 필요로 전환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산업사회에 대한 적의를 온전히 개인의 심리 탓으로 돌리는 해석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일을 공인된 좌파가 명백하게 비윤리적인 사회적 행위에 적용할 때에만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부당하다.) 그의 행위와 그의 선언의 일치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폭력에 대한 대체적인 인상을 접어놓고 말한다면(과연 그가, 가령 은행 설립자보다 더 폭력적인가?), 그의 외로운 테러는 논리상 완전한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테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의 글을 매체에 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의 선택은 상존하는 비극의 비극적 해결의 길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것은 이런 극단적인 일관성이 인간성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덕이 무엇인지 알면 반드시 행할 것이며,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한대로, 시간 속에 있는 실제 삶은 머릿속의 논리대로 곧바로 진행되지 않는다. ‘에서 까지 지체되는 시간과 우왕좌왕하는 시행착오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논리 바깥으로 나가보게 하는 은총이 아니던가. 어쩌면 급박한 논리화와 이 논리가 만들어내는 즉각적인 당위성에 삶을 완전히 일치시켰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과오였을지도 모른다.

카진스키만큼이나 이상한 것은 그의 희생자인 겔런터 박사의 수기에 나타난 지나친 기분 관리로 인한 모순투성이의 태도였다. 정 군은 그를 왁스 상으로 제작하여 힐링박물관에 영구 전시해도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1996415일자 타임 지에 실린 데이비드 겔런터 박사가 회상하는 사악한 비겁자’-유나바머에 대한 기억에서 그가 기술하고 있는 유나바머에 대한 태도는 확실히 감사와 경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기는 유나바머 덕분에 테크놀로지의 선구자라는 과분한 칭호를 얻었는데, 사실 그 정도로 훌륭한 과학자는 아니라는 것, 전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진술은, 어쩌면 유나바머의 기획이 완전히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직업상의 분류에 내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 내 천성에 따라 나는 작가이며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유용한 상거래를 배우고 아내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라 컴퓨터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폭발로 인해 내 오른손이 날아가 버렸고, 몇 달 동안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하지만 나는 이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웠고, 다시는 화가로서의 내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어떻게 보면 내가 미스터 테크놀로지로서 선택된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의 위업을 실현하는 데는 반드시 위대한 과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테크놀로지를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전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보다는 자녀들과 함께 놀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역시 모든 종류의 고귀한 인간적 탐구 행위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건설하려는 우리 인간들의 끝없는 노력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지는 이렇다. 그는 과학자였지만 실제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가 테러 이후에 분명해졌고, 그 덕분에 회화와 집필에 전념하면서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 겔런터 박사의 끝없는 낙천성은 악착같은 기분 관리를 넘어서 훨씬 명백해진 자기 욕망의 구체화로 나아갔는데, 우연히도(?) 이것은 유나바머의 의도와 맞아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글의 제목과는 달리, 그는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발견한 미덕을 위해 행복의 내용을 수정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통념이 각인시켜준 행복의 내용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화한 내용을 미덕이라고 부른다. 이 지난한 과정 가운데 종종 가슴속 깊이 절망을 느끼는 것, 그것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절망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아직 자기가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한결 나을 것이다. 느닷없이 폭력적이 되지 않도록 기분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되어, 즉 구체적이 되어, 타자가 알려준 행복의 세목들을 조사할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0 반드시 자기 얼굴을 본뜬 가면을 써야 비로소 자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처럼

 

그런데 자유는 오직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다른 것은 선택하지 않았음, 다른 것을 또 선택할 수는 없음을 견뎌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1926), 존재와 시간

 

힐링에 관해 쓰기를 부탁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나를 사로잡은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었다. 이 장면들은 순전히 경험으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에세이로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경험을 (이미 있는 담론에 따라 틀 지우는 것을 이론화라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 몇몇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사람들에게 종종 그렇듯이) 가능한 한 세밀하게 떠올리면서 모순되는 뉘앙스들을 빼먹지 않고 기술하는 것만이 더없이 화급한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유행하는 힐링의 몇 가지 유형들에 관한 견해에 대해서라면 많은 좋은 글이 있고, 모든 좋은 글이 그렇듯이 여러 편의 좋은 글들은 또한 서로 모순되는 점을 가지고 있으리라. 나로서는 이 이미 낡은 메타포(문예지의 기획면에까지 올랐다는 것이 그 확증이다)에 대한 어떤 입장이 옳은지확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이 단어로 단번에 지칭하기 전에 익히 알고 있었던 보다 더 낡은 용어들, 이를테면 절망, 불안, 공포, 두려움과 그것들의 회복, 그리고 회복의 여러 계기들과 그 방식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태도와 프로세스의 (나 자신을 포함한) 몇 가지 사례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이 회상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다. 그 근저에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인간 자신의 이중성이 깔려 있다. 나에게는 이 이중성, 기분과 마음의 분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표면적으로 이것--‘힐링의 어마어마한 수요가 사방에서 목격된다는 것은 광범위한 유아론으로의 후퇴처럼 보인다. , ‘타인을 될 수 있으면 목적으로 대하되,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행위하라, 칸트의 황금률을 살짝 수정한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도덕률은 이제 다음과 같이 대폭 수정된 형태로 유포되고 있는데, 그것은 될 수 있으면 자유롭게 행위하되, 우선 자기 자신을 사방의 심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라는 것이며, 여기에서 사라진 것은 타인과 관계성, 그리고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문제시되는 윤리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가까운 타인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 60cm 이내로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타자는 내 안에 있다는 지긋지긋한 지혜를 아무리 되새긴다 해도 타자가 결코 우리 자신과 동일하지 않다는 불안과 공포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내 안의 타자에 관해 고민하다가 우리는 결국 내 안에 방점을 찍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철학자들이 투자 고문들이라면, 우리 모두가 파산했을 것이다.”[각주:2] 심리적인 상처의 많은 부분이 인간관계의 오작동으로부터 온다고 우리는 호소하지만, 타인은 어찌 됐건 우리의 상상력이 허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식으로도 적중되지 않는다. 어쩌면 얼핏 유아론적인 떼쓰기처럼 보이는 힐링에 대한 요구는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한 고독과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불가피한 절망이 반드시 야기하는 경험을 통한) 구체적인 자기화를 결핍한 결과라는 것이다. ‘저는 제가 하는 말과는 달리,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실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제발 말해주세요!’ 이 절박한 신호를 받고는 괜찮아요, 자신을 더욱 사랑해주세요라거나 틀렸어, 넌 더 아파봐야 해, 무조건 견뎌라고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힐링 담론’(이라는 것이 있다면)에서 내가 받는 대체적인 인상에 관해 거칠게 말하자면, 나로서는 자기 자신과 광범위한 타인의 시선, 그리고 사회(라고 통칭되는 가상의 일관된 목소리--그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분열증자들은 그것이 우리 귓속에 있다는 걸 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던 미치광이는 왜 하필 뉴스데스크의 마이크에 대고 이 말을 외쳤겠는가.)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처세의 일환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견해에 대해서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톱 밑에 박힌 가시까지도 함께 울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유아기의 나르시시즘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것이 일시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당신과 나의 고독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울어주고 싶은 마음울어주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 대한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나는 훌륭하지도 않다. 게다가 나는 아직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하이데거의 저 말은 각자에게 쉴 새 없이 요구되는 피로다. 우리는 매일 자유를 실행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완성이 없다. 나의 마음은 전 형과 김 군 사이를, 카진스키와 겔런터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이것은 고백할 자격이 없는 자가 3인칭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실화들이다. 다만, 이토록 점점 등질적이 되어가는 질서 아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느슨한 보헤미안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나의 벗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내게 준 모순적인 교훈들을 당신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쓴 이야기의 실제 인물들에 관해 충분히 숙려되지 않은 채 기술된 부분들이 있을 터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낀다.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연락 주기를. 실례한 대신 술을 한 잔 사고 싶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 등장하는 좌절의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구체적 사정들은 적시하지 않았지만, 나처럼 당신도 희미하게 눈치 챌 수는 있었으리라. 작년 봄에 나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을 순전히 제목 때문에 구입했는데, 아직 읽지 않고 있다. 그 책을 샀다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하지만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기분일 때에 어느 깊은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그 책을 펼쳐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에 띄는 모든 책에 그 제목을 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통한 자들에게는 일단의 신문 기사에서마저 자기의 비통함의 맥락을 발견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데,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섹션의 뉴스를 주가 변동과 관련시킬 수 있는 고액 연봉의 주식 중개인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정교한 생존 전략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생존비용의 차이는 물론 엄청나다). 누군가에게 그 맥락은 유치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아직 입 밖에 꺼낼 수 없을 만큼 아플지도 모른다. 언술이 타인의 고통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언제나 불가피한 일이지만, 매일 신문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속화된 형태로 하고 있는 그런 일에 나까지 적극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1 아아, 그러나 어찌하랴, 내가 더해진 더럽고 불가해한 이 세계가 내 이념의 질료인 것을!

 

어디서부터가 하늘일까요?

하늘은 땅의 표면에서 시작합니다.

-뤽 낭시(2009), 신에 대하여

 

또 다시 수난 주간이 지나갔다. 괴짜 정치범이자 보헤미안들의 괴수였던 수난일의 그 남자는 유토피아를 가져오는 대신 그것의 이념이 되었다. 그것은 모든 유한자들처럼, 그러나 다소 극적인 방식으로, 그의 시신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그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는가가 다를 뿐.). 그의 시신의 실종 이후의 목격담들의 유의미성은 실종 자체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의미화는 언제나 사건 다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재상상된다.

실종 전 무덤 속의 사흘 동안, 그의 주검은 싸늘하게 식은 채로, 그러나 그의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아무런 윤리적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고, 딱히 미학적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어쨌거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과학이 아무리 그 과정을 설명해주어도 그 현전이 주는 신비를 모두 걷어가 버릴 수는 없다.

무덤 속에서도 머리카락은 자란다. 당신과 내가 주고받는 말처럼. 거기에서 자라는 희미한 신비처럼. 그것만큼 구체적인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부디 신비가 함께 하기를![각주:3]

(2013-05-10)

(<문학과사회> 2013년 여름호)

 

 

 

  1. soma.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이 나날의 부정적 감정들을 처리하기 위해 복용하는 일정량의 약.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이 단어는 ‘몸, 신체’를 의미하며, 인도의 베다 신화에서는 신주(神酒)의 이름이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하루 노동을 마치면 줄을 서서 적정량의 약을 받아 간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시민들은 매일 격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에 주사를 놓는데, 이것 역시 소마의 변형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투약은 의무사항이며 투약을 거부한 자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처벌 받거나 제거된다. [본문으로]
  2. 존 D. 카푸토(2001), 『종교에 대하여』, 최생열 옮김, 동문선(2003). [본문으로]
  3. “신이 함께 하기를!(God be with you!)”의 <스타워즈> 식 변형인 “기가 함께 하기를!(Force be with you!)”의 변형이다. 카푸토는 <스타워즈>의 이 대사를 근대성 자체와 그것의 한계성에 반발한 종교적인 생활감의 재상상 및 재신화화로 간주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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