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목소리와 같은 에고이스트는 없어. 자연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모든 타인을 희생할지라도 알아서 쾌락을 구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성스러운 견해야.
- 프랑수아 드 사드
금욕적인 수도자들은 비범해진다. (...) 그들은 다르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다른 곳에 있기를 갈망한다. (...) 다른 곳에 다르게 있기를 소원함에 담긴 위험성은 이 소원이 완전하게 실현될 가능성에 있다.
- 마크 에드먼슨
왜 증상은 멈추지 않는가?
- 자크 라캉
1987년 부근
넥타이 부대가 시청 앞 광장을 행진하던 1987년, ‘60년대산(産) 젊은 시인’ 장정일은 이 정치적 사건보다 몇 달 앞서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을 출간하고, 이어 김수영문학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되면서 문단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시집은 당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진영 양자에서 공히 표방하고 있었던 소위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표방하는 대신 모종의 무정부주의적인 견해를 제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햄버거>에 실린 시 「텅 빈 껍질」에서 그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 주어를 내세워 “세계는 텅 빈 껍질에 불과하지 않은가”라고 일종의 세대론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실과 시대 이래 자라난 우리는 망명 세대”, “내 십자가엔 그리스도가 없”고 “아무데나 입당원서를 내팽개치고/회전반에 판을 건다”. 정치는 사망 선고를 받고 취향이 깃발을 들기 시작했다. 그는 386 세대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여러 측면에서 그들과는 현저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세간에서 추측하고 있는 바로는, 그에게 ‘학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추측은 어쩌면 일정 부분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사회 전체의 지식인 콤플렉스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반증하는 징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학번이 없다는 것은 그의 특장점이기도 했다. ‘작가=지식인’이라는 등식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강요된 사회적 고민들로 부채의식에 시달리거나, 노동자, 농민, 여성 등과 같은 계급이나 젠더 상의 정체성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폭로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잉여’로서의 실제 체험과 광범위한 독서를 통한 추체험에서 비롯한 과격한 날것의 상상물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통찰적으로 다루었다. 80년대 문단을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사회과학주의는 기실 넥타이 부대와 친족관계에 있었으니, 그의 외설성은 어쩌면 그 같은 ‘역사’와 ‘정치’와 ‘사회과학’ 담론들로부터 선회하여 이후 오랫동안 도래할 ‘문화’의 폭발적 개화를 예고하는 때 이른 선언으로서의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90년대에 들어서자 그가 쓴 소설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때마침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 콘텐츠들에 대한 정부의 검열 약화,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지적 풍토의 점진적인 강화 국면이라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작품들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자극과 극적인 성격이 안성맞춤으로 맞아떨어졌던 것은 어쩌면 작가로서는 행복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때때로 위장된 엘리트 중심주의와 역사 중심주의적인 80년대 의 사고방식이, 역사주의 자체가 행사하는 잉여적 개인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인식으로 바뀌는 과정에 무시할 수 없는 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90년대는 지난 시기에 꼼짝없이 역사주의에 갇혀 있던 개인들이 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거대 담론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가져온 상실감에 대한 기나긴 애도가 시작하는 시기였다. 1988년, <길안>에 이어 출간된 또 다른 시집 <서울에서 보낸 3주일>의 말미에 해설이나 발문 대신 실린 그 자신의 산문 「혹성탈출-8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나타난 낭만주의 열망」이라는 글은 80년대 시인들의 도저한 부권 찬탈에 대한 열망 자체가 그 자신에게 어떻게 강압적인 부권으로 작용했는가를 시사한다. 그는 ‘낭만주의’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외연을 지닌 개념을 통해 80년대의 시적 정서가 지닌 공통적인 특질들을 짚어내어 거칠게 비판하면서 1930년대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폄하하고 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비판하고 있는 ‘낭만주의적 특질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신의 작품들만큼 잘 적용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타자로부터 그 자신만큼 강력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만큼이나 애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징후로서의 장정일
그러나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문학의 정신사적인 과정에 있어 장정일이 보여준 가장 큰 특이점은 그가 80년대 문학의 위압으로부터 받은 지대한 친족적 영향이 아니라 이 영향이 불러온 반작용으로서의 도착적인 성격일 것이다.
새로운 이론과 담론은 새로운 현상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불충분함을 인식하면서 출현한다. 그리고 담론은 그러한 현상들에 대한 주의를 집중시키고 한동안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학이나 철학 분야에서 도출된 현대 이론의 수입에 앞장선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문학이나 영상에 종사하는 문화전문가들이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징후가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을 즉각적으로 재현하는 문화 영역에서 우선 시작하여 그것이 상부구조의 체계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계급과 민족, 국가가 있던 자리에 그것의 기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밝히는 신화학, 계보학, 민속학, 그리고 미시사의 영역이, 그리하여 ‘폭로하는 입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름이 서점가의 신간 코너를 도배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거대담론의 몰락과 더불어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정신분석은 역사주의적이고 사회과학주의적인 공동체 중심 담론의 폐허에서 눈에 띄는 각양각색의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징후들을 발견한 순간, 이 징후들의 패턴이 계열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징후들이 고유하다는 가정 하에 세심하고 독자적인 해석이 필요한 ‘나의 사소하지만 실존적인 절체절명의 외상들’의 시대에 빠르게 퍼져나간 거대담론의 대체물이었다.
장정일이 프로이트나 라캉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보여주는 문학적 결과물들이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사도-마조히즘 등 성적 금기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이 개인의 욕망과 큰 타자가 맺고 있는 관계 양상으로부터 도출된다고 하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프로이트가 있기 전에 소포클레스의 「외디푸스」가 있었고, 라캉이 있기 전에 사드와 그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가령,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첫 장편소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1988)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해체주의가 있기 훨씬 전부터 나는 해체주의자였다.” (이 ‘해체주의’는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여져야 하리라.) 어쩌면 장정일을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에 기초하여 해석할 수도, 루카치나 민족주의 담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정신분석학에 의한 해석만큼 그 새로움을 부각시켜주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장정일은 욕망의 문제를 둘러싼 하나의 돌출적인 문화적 증상이었다. 그러나 장정일이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외설적 특징들로 하여 그를 도색 작가로 떠올리는 것만큼 그에게 모욕적인 것이 있을까? 고전적인 정신분석의 테제에 의하면, 금기는 일정한 형태로 발달한 사회의 문명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금기에 대한 도전은 과거의 가치체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의 메타포로 여겨진다. 시가cigar는 가끔 진짜 시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피분석자에 따라 은밀한 남성 성기의 메타포로 꿈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장정일 작품들에 편재한 성적 코드들은 그것이 실재적인 것만큼이나 비유적이기도 하다.
영화 <거짓말>의 외국 포스터
가령, 그에게 외설작가라는 혐의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게 만든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거짓말>이 무혐의 처리를 받은 것과는 달리 그 ‘음란함’을 이유로 작가로 하여금 실형을 선고받게 하고 판매 금지 조치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영화 <301302>의 모태가 되었던 그의 시 「요리사와 단식가」를 보면, 먹고 굶고 먹히는 인물들의 메커니즘이 영화 <거짓말>의 끊임없이 맞고 때리는 반복되는 정사 장면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아쉽게도 <거짓말>의 원작은 볼 수 없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 구조가 소설의 그것을 과히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장정일의 유명세를 이루고 있는 그의 외설성이 모종의 근원적인 폭력적 외로움의 반복적 메커니즘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반복이 그치는 자리는 비극일까, 희극일까.
시 한 편이 가지고 있는 축소주의적인 도착적 개인들의 인물 설정이 어떻게 당시의 금기 파괴의 욕망과 관련된 신경증적 징후들과 만나 한 편의 사례 연구에 가까운 심리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요리사와 단식가」 또는 <301․302>
1995년에 개봉한 박철수 감독의 <301․302>는 한 아파트에서 맞은편에 사는 거식증에 걸린 여자와 폭식증에 걸린 여자가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희비극적인 파국을 그렸다. 흥행 면에서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그해 대종상 영화제의 트로피들을 휩쓸고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등, 당시로서는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충격적인 결말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미주 지역 비디오 대여점에 정식 배급되어 꽂혀 있던 한국영화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301․302>뿐이었다고 한다. 영화의 서사는 한 형사가 실종된 302호 여자(윤희)의 실종을 탐문하기 위해 301호 여자(송희)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어, 이미 과거가 된 301호와 302호의 관계를 회상하면서 진행된다. 301호는 끊임없이 요리하고 먹고, 302호는 거식증에 물만 먹으며 글을 쓴다. 영화는 이들의 도착적인 요리와 탐식, 거식과 글쓰기가 어떻게 이들의 증상이 되었는가를 송희의 회상 속의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301호는 자신의 요리와 자신을 거부하기 시작한 남편 대신 스스로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폭식증에 이르게 되었고, 남편의 변심을 확인했을 때 남편이 좋아하던 애완견을 요리해 먹이고 이혼한다. (남편은 법정에서 “이 여자는 저까지 요리하려 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카니발리즘적인 영화의 결말을 암시한다.) 302호의 거식증의 연원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 5년 간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던 정육점 딸 302호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냉동고 속에 숨어 동사한 동네 소녀의 사체를 아버지의 강요로 토막 내야 했던 정신적 외상이 있다. 이후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죄책감으로 아무것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토막 난 사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것은 카프카가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의 죽음 이후를 묘사하는 부분을 떠올린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가 죽고 나자 푸줏간 주인이 계단을 올라오는 장면이 짧게 기술된 후, 일제히 결근계를 쓰고 소풍 준비를 하는 식구들에게 가정부가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묻는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아세요?” 식구들은 관심이 없다.)
영화는 이들이 서로 다른 자신의 증상을 향유하기 위해 상대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을 행사해야 했음을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원작인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를 보자.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게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 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장정일, 「요리사와 단식가」,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민음사, 1988)
혹자들은 영화제작사 측에서 이 영화가 장정일의 시에 빚지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아온 것에 관해 분개하기도 하지만, 영화사나 감독의 입장에서는 반전이 극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단 3연으로 구성된 산문시 스포일러를 굳이 밝히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육 먹기의 충격은 이것이 순전히 두 인물 간의 성격에 의해 이루어지며(따라서 이 시는 성격비극의 특성을 띤다), 합의에 따라 실행된다는 데서 온다(따라서 이 이야기는 절반쯤 해피엔딩이다). ‘얼마나 외로웠으면!’이라는 반응이 독자에게 기대되는 반응이다. 누구라도 죽일듯한, 누구에게라도 죽을듯한 외로움이 이 시의 주제다. 감독이나 기자 같은 건조하고 관조적인 시의 어조는 이 시에 거리를 부여하며, 독자는 자신이 아주 짧은 상황극이 상연되는 극장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영화는 이 단순한 구조에 ‘그래서?’로 이어지는 서사적 메커니즘 대신 ‘왜?’라는 소급하는 회상 방식을 통해 젠더 연구의 사례 같은 일종의 전형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 문제를 환기시키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을 때 미국의 영화잡지들은 이 영화를 서스펜스, 호러, 심리 스릴러와 함께 젠더코미디의 범주에 배치하고, “한국의 여성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내용의 평론을 실었다.)
그러나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온갖 요리 장면이 정말로 젠더 연구에 필요한 것인가? 왜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반복’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는가? 이 반복을 끝장내는 것이 카니발리즘이라는 것은 왜 어쩐지 신학적으로 들리는가?
위험한 욕망 실현
302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요리를 먹이려 시도했던 301이, 302의 내력을 듣고 이해한 뒤 환자식에 가까운 요리들을 시도한다. 요리를 자기의 대리물이자 욕망의 매개로 여겼던 그녀는 이제 302를 ‘위하여’ 요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302에게 먹이려 시도한 마지막 음식이 ‘송이죽’이었음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송이는 301호의 이름(송희)과 음운이 유사하다. 그녀는 장을 보러 나가지만 더 이상 무엇을 요리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가공할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 집에 돌아온 301호가 송이죽까지 토해낸 302호를 발견하자, 그녀는 탈진하여 쓰러진 윤희를 요리 재료처럼 정성스레 씻긴다. (그녀의 집에는 욕실이 없다. 변기도, 욕조를 대신하는 거대한 싱크대도, 구획 없는 거대한 주방의 일부다.) 마침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읊조리던 302호는 301호 앞에서 가운을 벗고 자신을 요리 재료로 내놓는다. “왜요, 맛이 없을 것 같아 보여요?” 301호는 충동적으로 달려가 그녀를 안고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후 그녀의 목을 비튼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목이 비틀리는 302가 아니라 301이다. 완벽하게 은유로 처리된 동성애 장면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지나치게 능동적인 301호가 수동적이기 짝이 없는 302에게 (결말과는 반대로) 자신을 ‘먹이려’ 했다고 영화 전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그것은 무차별적인 욕망이었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그것은 애정으로 성격이 변한다. 못 먹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심지어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먹이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또, 끊임없이 먹고 먹임으로써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끊임없이 먹어주는 것인가, 새로운 음식이 되어주는 것인가?
어찌 보면 두 사람의 호의는 상대로 향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지독하게 이타적인 동시에 이기적인 화해로 융합된 것 같다. 302호는 301에게 재료가 되면서 지긋지긋했던 삶을 끝장내고, 301호는 302호를 먹으면서 폭식증의 고리를 끊는다.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301호는 302호처럼 머리가 짧고 아주 날씬하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새로운 하나가 되었다. 301호는 형사와 함께 텅 빈 302호에 들어가 302호가 생전에 써놓은 섹스 칼럼 원고를 읽으며 비웃는 형사에게 신경질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앞으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글을 쓸 거예요.” 주지하다시피, 작가는 302호의 꿈이었다. 그녀는 이제, 요리를 즐기면서도 날씬한, 작가가 될 것이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는 과정으로 범속하게 설명되곤 했던 변증법적 논리에 아주 모욕적인 논리가 아닐까? 이 이상한 종합은 합명제만 남기고 테제와 안티테제를 모두 지워버린다. 적어도 감독은 이 점을 예감했던 것 같다. 개봉 당시에는 삽입되어 있었던 냉동고 속의 302호의 머리 장면을 삭제한 것을 보면 말이다.
정-반 없는 합 명제, 혹은 아버지 없는 세계의 단성생식
우리가 죽지 않고도 겪게 되는 지옥, 바로 반복으로 점철된 '지금-여기'라는 삶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반복이라는 무의미한 형벌로 가득한 삶을, 반복이란 행위로 감싸고 돌파하는 양식이다.
-장정일, <구월의 이틀>
장정일의 시는 어디까지나 지독한 외로움에 관한 우화였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자기의 논리를 섞어 넣으면서 동시에 장정일의 무의식까지 반영한 것 같다. 301과 302의 합일에서 남은 것은 어머니-아버지-자식으로 이루어진 3항의 외디푸스 트라이앵글, 혹은 정-반-합의 세 개의 테제가 아니라 ‘301․302’라는 하나의 항으로 표지할 수밖에 없는 화학적인 변종이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없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 301과 302의 친부는 전혀 출현하지 않는다) 무심하거나 고통을 방관하는 어머니들만 있으며 주인공인 딸들은 남자에게 과잉된 리비도를 투자하거나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서사 논리상 이들의 증상은 성폭행이나 결혼생활에 집중되어 있지만, 영화의 시작 부분에 흐르는 어린 송희와 윤희의 독백을 떠올려보라.
송희 :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음식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나는 차가운 음식을 절대로 안 먹어요. 엄마가 오시면 금방 만드신 따뜻한 음식을 먹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일하시느라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어요.
윤희 : 우리 집 냉장고는 아주 커요. 언제나 시뻘건 고기들이 있어요. 우리 엄마는 뼈다귀에서 살코기를 아주아주 잘 발라내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 집 냉장고 속에 노란 오렌지주스나 파란 사과가 들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이들의 합일은 일종의 단성생식이다. 그런데 이 생식은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여버린다. 이것이 장정일이 80년대 시인들의 충혈된 부권 찬탈의 욕망에 대해 느꼈던 염증과 관련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301과 302의 욕망은 ‘실제로 실현’되었으며 이제 한 개체 안에 행복하게 공존하고 있다. 단, 이 금기 위반이 비밀에 부쳐지는 한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원작 시가 그런 것처럼 예술이 하나의 위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을 실증한다. 우리는 이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 요철(凹凸)이 있어서 완전히 자발적인 합일을 이루어 세상에 없는 한 개의 문자로 만들어지리라는 환상을 실제로 믿을 수도 있지만, 한편이 다른 편에게 먹히고자 하는 자발적이고 실재적인 죽음충동 없이 이 환상은 실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철들을 여러 개 결합해 보아도 생기는 것은 입(口)들뿐이다.) 여기에서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 반복을 멈춘다는 신학적인 발상에 관해 윤리적으로 논쟁하는 일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어차피 우리는 아직 세상의 모든 302가 세상의 모든 301에게 자기를 내어준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세계가 얼마 동안이나 안정적일지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세상 모든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의식을 반복하는데도 세계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아니, 그래서 그나마 이 정도인가?)
힌트 : 301호는 302호와 합체한 뒤 폭식증의 고리를 끊었지만, 여전히 요리를 멈추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