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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만우절

 문과대 독서실 옆문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고 있으려니 교복 입은 신입생들이 모여들어 불량 고등학생처럼 침을 찍찍 뱉어가며 담배를 빤다.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온 예비군처럼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은 대번 자기가 '고딩'일 적에 얼마나 불량했던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물론 거개가 뻥이다. 그들의 무용담처럼 '야생마'로 살았더라면 여기서 이렇게 날라리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 학교의 교복들은 '쌔삥'처럼 날을 잘 세웠고 머리는 염색을 했거나 펑키하다. 여학생들은 스커트를 급히 줄여 입은 티가 난다. 남학생들은 모델처럼 날렵해 보이려 가슴을 펴고 연신 어깨를 털고 있다. 아무리 날라리인 척해도 어딘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보여야 한다. '진짜 날라리 고딩'의 생짜의 감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물론 없다. 노땅들은 '쪽팔리지도 않나?'와 '부럽다' 사이에서 아슬하다. 교복을 잘 차려 입고 온 신입생들은 문과대 '독서실' 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시험의 추억을 조롱할 시간이니, 교복과 어울리지 않는 짓들만 골라 해야지, 아무렴! 이 의례도 내년부터는 우스꽝스러워질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군대에 가거나 슬슬 토플 걱정을 하게 되겠지. 싫어도 조만간 도서관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

 이 교복 코스프레가 그, 시험의 순환에 약간의 숨구멍을 뚫는 일이 될 거라는 거, 몰라도 되고 알아도 상관없을지 모르겠지만, 고딩-대딩-직딩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중상류층의 인생이 실은 전혀 자유롭지 않아서 될 수 있으면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려고 틈만 나면 지랄발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 누가 내게 이 순환에 대한 집착 아닌 다른 눈을 좀 끼워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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