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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to mistymay

나는 왜 이제서야 내가 니체를 이해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마도, <데미안>을 네 번쯤 읽었던 열 다섯 살 이래로, '밝음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양 극단에 열광했던 것 같아. 아니, 이전에 내가 열광해왔던 것을 비로소 문자의 형태로 만난 느낌이었지. 하지만 그건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어. 그 때문에 나는 이 두 세계의 양립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양 극단 사이를 조울증 환자처럼 오가고 있었던 거야. 이제까지 나는 니체의 수사와 빛나는 금언들에는 감탄하면서 불쾌한 반-정치적 올바름의 언명들에는 주저없이 경멸을 보내고 있었거든.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중용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중용'이라는 객관적 자리 같은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과 '노예를 경멸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상 동일한 것임을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게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이것은 어쩌면 이제까지의 경험의 총체가 양질전화하는 것일지도 몰라. 외부인들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그런 변화야.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좀더 강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자신만만하게 세파를 헤쳐갈 것 같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적으로 탄성이 현저히 강한, 두꺼운 굳은살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 예감이 좋아.

내년부터 시작되는 H-Y 한국학 연구소에 신청을 포기했어.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였지. 아마 누구라도 이건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생각할 거야. <ㅁㅎㄷㄴ>의 제의를 거절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나는 나를 숙성시키고 있어. 내 속의 동기와 외부의 시간과 우연한 계기가 딱맞게 조준되는, 그래서 저절로 꽃봉오리가 자연스럽게, 그러나 충격적으로 열리는 그런 순간이 올 것 같아. 그러니까, 복권을 사지도 않으면서 당첨을 바라는 그런 사람으로, 너만은 생각하지 말아주기를.

나는 모든 '현실적인 계기들'을 포기하기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다만 어떤 변화를 지금 겪고 있고, 이것은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저속한 조건들과는 아직 접합하지 않고 있어.

내 안의 세속적인 어떤 측면들이 어둡지만 무척 사실적으로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아.

그러니까, 믿어주기 바라. 사실 나는 지금 나의 무엇을 너에게 믿어달라고 하는 것인지, 오늘 왜 갑자기 이런 미친 편지를 네게 쓰게 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어. 하지만 왠지 내가 모르는 그것을 너는 알 것만 같아.

삶이란 이토록 누추하면서도, 영락한 동물인 나에게 황홀한 교훈을 주는 이상한 곳이야.

언제나 건강하기를, 그리고 너의 정신의 위대함에 관한 증거들을 내가 무수히 간직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기를.

ps. ㄱㅇ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어. 나를 비난해도 좋아. 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그녀의 충실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단 한번도.) 이런 나의 무정함을 너만은 경멸해도 좋아.

2008.5. 29.
오리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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