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 context

<문학동네> 2011 가을


* 우선 신인상을 받은 시인 최예슬의 등단작들 중에서 한 편;

비밀의 왕국

                           최예슬

먼 옛날 비밀이라는 작은 왕국에 일곱 백성이 살고 있었다
유난히 비밀이 많던 거짓말여왕, 일곱 백성을 너무 사랑하지만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모두 사형할 것을 명령했고......
이것은 두더지 서기관이 비밀리에 옮겨적은
일곱 백성들의 유언장

귀머거리 시인
고독에 대한 풍문이 들려오면 마을 언덕에 모닥불을 피워주세요, 흉가에서 들썩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보고 싶어요.

어린이
일기를 쓰는 것은 숙제였으므로 일기장에는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었어, 엄마가 죽으면 염소에게 일기장을 먹여야지.
(엄마에게는 비밀인데요 나는 시도 쓸 줄 알아요. 어제도 꿈속에서 엄마가 죽는 시를 썼다구요.)

소심한 혁명가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쌍둥이 심장
너와 나의 경계에서 잠들고 싶다 그것은 너도 되고 나도 되는 것. 열렬한 왼편 냉담한 오른편. 웃음이 울음처럼 터지려고 합니다.

원더보이 알바
간신히 스물다섯번째 스테이지. 동전 몇 푼에 원더보이 노릇도 지긋지긋하군. 좀처럼 판은 깨지지 않고, 빌어먹을 못생긴 공주는 어디에 있길래.
왜 당신의 전략은 늘 그 모양입니까 지겨워 죽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서툴렀습니다. 오늘은 어제를 입은 내일과도 같아서 늘상 처음하는 인사입니다.

그리고 나, 두더지
나의 진실은 거짓말이에요 당신께 진실해지는 순간 나는 거짓이 되어버리죠. 나의 엄마 거짓말여왕은 내가 왕국에서 가장 진지한 서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달라요 나는 왕국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시인입니다.

백성들을 죽이고 왕국에 홀로 남은 거짓말여왕
너무 심심한 나머지 거짓말 놀이를 시작했다
자신은 여왕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하고
여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거짓발을 낳고 또 거짓말을 낳고......
결국 자신이 여왕인지 아닌지 헷갈려 광기에 사로잡혀
영원히 비밀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을 기록하고 있는 나,
그러니까 나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