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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이상한 이상

내일 희망의 인문학 문학 강좌 마지막 시간에 함께 읽으려고 '자화상'과 관련된 시들을 골랐다. 윤동주, 서정주, 최승자(물론 1941년작 서정주의 자화상으로부터 1988년작 최승자 사이가 너무 멀기는 하지만). 윤동주는 22세에, 서정주는 23세에 "자화상"을 표제로 한 시를 발표한다. 최승자는 그래도 만 36세에 시집에 실린 것으로, 그러나 독기는 20대의 그것인데, 나는 여기에 말랑말랑하고 세상을 포용하는 시선도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 신경림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추가하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다 보니 이상의 "거울"도 추가해야 할 것 같아 새삼 연도를 찾아보니 34년작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른 5편의 "자화상" 시들 중 가장 이른 작품이다. 이상이 1910년생이니까, "거울"은 만 24세 때의 것이고, 그는 3년 후에 폐결핵으로 죽는다. 윤동주는 1939년(발표는 41년), 만 22세에 "자화상"을 썼고 6년 후 교토에서 옥사한다. 물론 아시다시피 서정주는 오래 살았고 시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썼다. "자화상"이라는 제목 자체가 내가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니 20대의 독기나 나르시시즘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얼굴을 내 얼굴이라고 그려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그 혈기가 어딘가 방자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논가 우물"에 비쳐본 자기 얼굴에 놀라 도망갔다가 그리워져서 다시 들여다보러 오는 윤동주의 "자화상"의 순진한 자기애보다는 거울 속의 내가 온통 이상하기만 한 이상의 "거울"이 오히려 겸손하게 생각된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은사이신 ㅇㅈㅎ 선생께서는 이상을 무척 싫어하셨지만, 나는 그래도 일찍 죽은 시인들 중에 이상이 제일 아깝다. 그리고 우연성이 지배적인 장르라 연극은 별로 보러가지 않지만, 이 연극은 보고 싶다.


<오후여담>
시인 이상
‘이상(李箱)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시인 고은은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 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27세의 나이로 1937년에 일본 도쿄(東京)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 천재 시인 이상을 1974년 펴낸 ‘이상 평전’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본명이 김해경인 이상이 시·소설·미술·건축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남긴 예술의 폭과 깊이는 물론 삶의 족적에 대해 한마디로 이보다 더 잘 드러낸 표현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31년에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김해경이 자신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에게 선물받은 ‘오얏나무 화구 상자’라는 의미의 이상을 필명으로 처음 내세운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만 해도 이를 입증한다. 띄어쓰기를 일절 무시한 채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하고 시작하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시지만 두고두고 연구와 창작의 대상·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욱 감독의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1999년에 개봉됐던 것도 한 사례다. 그해 재미 극작가 노성은 영어로 쓴 희곡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발표하기도 했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가 이상의 기일인 4월17일에 맞춰 ‘이상 전집’을 출간하면서 그동안 ‘성애시(性愛詩)’로 알려져온 ‘차(且)8씨의 출발’에 대해 “구본웅이 예술가로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시”라고 새롭게 해석한 것도 마찬가지다. ‘차8’이 한자 ‘차’ 밑에 ‘8’을 옆으로 눕혀 남자 성기를 은유한다는 기존 해석을 뒤집고 구본웅의 ‘구(具 = 且 + 八)’ 그 파자라고 한 것이다.

미국 실험극의 거장으로 올해 72세인 리 브루너는 최근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상의 시를 읽는 순간 ‘광기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체코 출신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바람구두를 신은 시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프랑스의 아르투르 랭보가 겹쳐졌다. 그는 초현실주의 작가였고, 전위적이었고,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만한 시인이었다.”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5월1일부터 6월28일까지 리 브루너 연출로 연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가 공연된다니 새삼 반갑다. 이상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적 자산으로 더 많은 장르를 통해 더 다양하게 재조명·재창조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종호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9-04-25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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