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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in memory of K(1966.2.16~2008.6.9.)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왜 유가 아니라 무인가?

어머니 전 혼자예요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공중을 떠도는 비눗방울처럼
무섭고 고독해요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어머니 전 혼자예요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고요히 솟아오르는 말불버섯 홀씨처럼
어둡고 축축해요
나는 곧 지구 부피의 여덟 배로 자랄 거예요
아무도 이 거대한 가벼움을 우려하지 않아요

여기에는 좁쌀알만 한 빛도
쓰레기 같은 정신도 없어요
혼자 생각했어요
연기(緣起)가 없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우연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단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타이가의 호수에서 보았지요
안녕하세요? (하고) 긴 꼬리를 그으며
북반구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안녕? 나는 무사해
어둠이 내 유일한 인사였어요
이것이 내 유일한 빛이었어요

나의 우주에 겨울이 오고 있어요
나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다시
어느 별의 일부가 될 거예요

새로울
나의 우주는 아름다울까요?

혼자 생각해봐요
이 무한에 내릴 흰 눈에 대해서
소리도 없이,
소·리·도·없·이·내·릴·흰·눈
에 대해서

어머니 전 혼자예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울지요
나는 어디에 있나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싶어요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도
아름다움은 있을까요?

거기에, 거기에 고여 있을까요?
존재가 없는 연기(緣起)처럼
검은 구멍처럼

어머니 전 혼자예요
쇠락하고 있지요

- 함성호, 『문학과 사회』200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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