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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시

to Indimina



 론 울프* 씨의 혹한
 

 론 울프 씨가 자기 자신을 걸어 나와 불 꺼진 쇼윈도 앞에 서자 처음 보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하나의 입김으로 곧 흩어질 것 같은 그의 영혼.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유일무이한 대기의 조각으로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그의 단벌 외투를 벗겨간 자들에게 그는 반환을 요구할 의사가 없다. 처음부터 외투는 그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겨울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친구가 셋 있었는데 하나는 시인, 하나는 철학자 그리고 자기 자신이었다. 그들은 자존심이라는 팬티만 걸치고 혹한을 견디려는 그의 무모한 결심을 존중해주었지만, 이 존중이 그의 저체온증을 막아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는 스테판에게 말했었다; 저 육각의 눈 결정이 아름답다면,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아름다움은 어떤 돋보기가 결정해주는가. 나는 갈비뼈가 드러난 한 덩어리의 공허다. 이것이 나라면, 나는 나를 견디는 것이다. 이 결심의 무한한 휘발성이, 자네는 보이는가.
 

 그는 분명히 엘리아스에게도 말했었다; 누추한 영혼들이 새까말 정도로 빽빽한 군중을 이루고 있는 저곳으로, 나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협회에도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의 변호인단이 될 것이다. 이 결심의 자발적인 선의를, 자네는 이해하는가.
 

 론, 제발 쉼터에 들어가게. 자존심보다 생존이 중요하지 않은가.
 

  두 친구는 각자 털장갑과 낡은 목도리를 벗어주었었다. 그는 흐느낌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세심하게 성량을 조절해야 했다. 그는 곧 이 조절의 기예가 될 것이다. 아지랑이 한 줌의 절도를 누구도 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네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군.
 

 반짝이는 육각의 표창들이 제 과녁으로 쏟아졌다. 아무도 그의 외투를 위해 투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래 전에도 한 남자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그에게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워준 적이 있다. 그건 그나마 잘 알려진, 따뜻한 나라의 이야기.
 

  이제 그는 한밤의 쇼윈도 앞에서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의 얼굴을 투과한다. 제 뒤통수가 아니라 다른 겹의 세계를 문제 삼은 자. 이 결빙한 눈―사람은 녹지 않고 단호한 매무새로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오, 그 결심의 유해함을, 그의 증발을, 누가 알아챌 것인가.
 



론 울프Lonne Wolff; 생몰 연대 미상. 욥Job, 트래비스Travis, ‘지하 생활자’ 또는 시오도어 카진스키Theodore Kaczynski,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잊을 만하면 공공기관 앞에 발자국과 혈흔, 해독하기 힘든 낙서를 남기고 사라진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스스로를 ‘하느님과 법이 없으면 잘 살 사람’으로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혹자들은 그가 재림 예수, 이 시대 마지막 금욕주의자, 타락한 현대판 차라투스트라, 모든 무정부주의자의 전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명들은 불명확한데, 그것은 그가 세속적인 낭만주의가 정의하는 모든 종류의 환상을 거부하였음이 최근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환상에는 처형당함으로써 봉기를 촉발한 혁명가, 순교자, 그리고 망치나 사제 폭탄을 든 게릴라나, 평화를 선전하며 구원을 설파한 보헤미안의 이미지도 포함된다.)

 

 
-<현대문학>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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