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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시인론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문학관 개관 기념 학술 세미나 발표문)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정한아

어떤 이야기가,

그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 파울 첼란, 나무 없는 나뭇잎 하나-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하여.

 

김일성만세의 당혹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1960.10.6.)

- 김일성만세전문

이 발표의 첫머리에 이 시를 인용하자고 생각하고부터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저는 제법 많은 시간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오가고 있었던 고민의 내용은 이 시를 정말 인용해도 될까?’ 하는 무의식적인 내적 검열과, 마치 김수영이 시 허튼 소리를 쓰고서 이 작품은 예의 <언론의 자유의 희생자>를 자처하고 나서려는 제스처의 시에 불과하다.”고 썼던 자괴감과 비슷한 무엇이었습니다. 오늘날 저의 세대에게 이 시의 제목은, 따옴표 안에 씌어 있는 것을 재인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도 꺼림칙한 느낌을 줍니다. 그것은 물론, 이념적 대치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던 작년 대선 정국에 철학자 강신주가 지금 자유로워 보이는 젊은 대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를 확인해 보고 싶어학생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었을 때, 그가 정확히 예상했던 바대로 당혹스러워한 청중의 하나로 저 스스로를 (약간) 느낄뿐더러, “김수영이 시를 쓴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내면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허탈했다.”고 쓴 맥락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꺼림칙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2008년 여름, 창작과비평에서 미발표 유고에 섞인 이 시의 제목을 대했을 때의 충격은 ’94년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신문 가판대에 일제히 시커멓게 새겨졌던 김일성 사망의 충격보다는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회상하자면, 이 헤드라인은 ’97년 말 외국에서 본 The Vanouver Sun1면 전체를 장식한 한국 파산(Korea Broke Down)”보다도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헤드라인의 충격은, 아마 김수영이 이 시를 발표하려 했던 목적 중의 하나인 금기 파괴’--‘김일성이라는 고유명사를 반공주의적인 교과서 바깥에서 공식적으로 거명하는 것가 언론 자신에 의해 행해졌으며, 동시에 김일성의 사망을 고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가 가상이거나 <똘이장군>에서처럼 인간의 탈을 쓴 돼지(이 만화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이나 미국 드라마 <타잔>을 반공주의 교육 교재로 재구성한 시대물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가 아니라, 정말로 생존했던 (그리고 죽을 수도 있는) 실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일성 사망은 김일성과 김일성’, 두 개의 사망을 동시에 의미했습니다.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발성되지 않은 상태로 교과서 안에 박제되어 있었으며, 발성될 수 없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미’ (무시무시한 신화이긴 하지만) 일종의 신화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태양궁전에 부패 방지 처리되어 안치되기 전부터 이미 그런 상태였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김수영의 시가 ’60년에 발표되었더라면, 2공화국 하의 시민 정서와 해석 능력이 이것을 견딜 만한 탄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다른 결과들은 차치하고, 이 같은 금기 파괴의 효과는 저의 세대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을까요?

물론, 이 같은 역사적 가정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없는 것이겠습니다. 김수영 자신, 한국전쟁을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여직 전쟁의 상흔이 생생한 사람들 속에 김일성만세라는 터부를 던져 제2공화국의 언론 자유라는 아름다운 성상(聖像)이 사실은 매우 깨어지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음을 보여주려 퍼포먼스를 시도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다만, 우리 시대에 철학자 강신주가 예상하는 바로 그반응으로서의 당혹감과, 이데올로기적 성상 파괴로서의 김일성만세낭독은, 그 반()-반공주의적인 명확한 의도 때문에 일정 부분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반공주의라는 개념이 공산주의를 전제로 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처럼, ‘-반공주의역시 반공주의 없이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무언가 오해가 있습니다. ‘김일성’60년대 북한의 경제적 비교 우위와 그 후광과 터부로서의 양가성은 실제 인물인 김일성과 함께, 신문의 헤드라인에 등장했을 때, 거의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일성만세김일성 사망이라는 신문 헤드라인과 비슷한 효과를 애초에 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20대인 동생과 60대인 아버지에게 이 시를 읽혀보았습니다. 뉘앙스는 약간씩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시대를 앞서갔다는 것이 첫 반응이었는데, 이어 두 사람 모두 시가 별로다라는 다음 반응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정치적 효과이고, 두 번째 반응은 미학적 평가였습니다. 이 시의 직설적이고 비꼬는 듯한 어법(sarcasm)은 아무래도 제2공화국의 감수성보다는 시의성을 노리고 있었던 듯합니다. 김수영 자신, “우리나라의 비평가들처럼 사회성을 과도히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심미적인 시평이 산적한 나라도 세계에 그 유례가 없을 것이다.”라고 쓴 적도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미학적인 해석은 이를 박을 틈이 좀처럼 나지 않겠습니다.

 

국왕 폐하 만세!”의 광기(狂氣)

 

대신, 저는 이 시의 우회적인 참조점으로서 오래된 독일 희곡의 마지막 장면을 인용할 요량입니다.

순찰대가 등장한다.

 

시민 : 여봐요, 거기 누구요?

뤼실 :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심을 한 듯 돌연히) 국왕 폐하 만세!

시민 : 공화국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그녀가 순찰병들에 의해 포위되어 연행돼 간다.

-게오르크 뷔히너, 당통의 죽음, 뷔히너 문학 전집, 임호일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1835, 약관을 겨우 넘긴 게오르크 뷔히너는 자신의 첫 번째 문학 작품이 될 희곡 당통의 죽음을 집필합니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의 혁명 동지로서 1792년 왕권이 무너진 이래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혁명재판소를 만들고 공안위원회를 창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적 프로퍼갠더와 공포정치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패한 부도덕 인자로 낙인찍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함께 처형당한 동지, 시인 카미유는 죽음의 순간에도 극적으로 운()을 맞춰 죽으려 했지만, 그의 무지한 아내 뤼실은 남편을 사랑했을 뿐,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이 주고받는 예술이나 정치에 대한 대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그녀가 남편이 죽은 단두대 계단에 앉아 돌연히” “국왕 폐하 만세!”를 외친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왕정을 위해 그 말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미친 짓이 아닐까요? 그녀는 공화국의 이름으로체포당합니다.

.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장소에서 말 한 마디의 위력이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극중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외쳤더랬습니다. “혁명정부는 독재주의에 반기를 들고 자유의 전제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것이오.(...) 공화국에서는 악덕이 도덕적인 범죄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범죄이기도 하오. 패륜아는 자유의 정적이오. 그가 자유에 대해 공적을 많이 쌓는 것같이 보이면 보일수록 그는 그만큼 위험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오.” (당통은 독재정부라고 부르는)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에 있어 공화국의 자유와 위험을 가르는 백지 한 장의 간격은, 말하자면, 국왕 폐하 만세!” 한 마디에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설령 그것이 그 말 자체의 뜻을 떠난 말이더라도, 뤼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극적으로 탈출하기 위한 효율적인 도구로서 그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행동으로서의 시

 

아마도 국왕 폐하 만세!”김일성만세는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그 행동이 보여주는 것은 제때 미치는 것의 의미입니다. 미치기 위해서는 잠시 숨을 들이마셔야 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심을 한 듯 돌연히)”라는 지문,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에서는/제일이지만//이북에 가면야/꼬래비지요라는 결구로 마무리된 예의 <언론의 자유의 희생자>를 자처하고 나서려는 제스처의 시를 쓴 뒤 열하루 동안의 공백은, 제때’, 주인공과 화자가 터뜨릴 광기를 모으는 용기(容器)의 수위(水位)가 범람하기까지의 들숨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제때는 사후적으로 규정되며, 그 현실 속에서 이 시점은 잘못된 시간으로 감지됩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행동, 그것이 문학은 때로 우리를 추월합니다,”라는 말의 뜻일 터입니다.

파울 첼란은 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뷔히너)국왕 폐하 만세!’는 더 이상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말막힘입니다. (...) 신사 숙녀 여러분, 시는, 죽을 수밖에 없음, 쓸모없음에 불과한 것의 영원성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김수영 역시 행동으로서의 시에 관해, 혼란한 미완의 4월혁명 정국을 지나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후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 행동을 위한 밑받침. 행동까지의 운산(運算)이며 상승.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의 총화가 행동이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 그때는 3할의 비약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때인 동시에 회의의 구름이 가시고 태양처럼 해답이 나오고 행동이 나온다. 시는 미지의 정확성이며 후퇴 없는 영광이다.”

그것은 잘못된 시간”(사랑의 변주곡)에 속해 있으며, 니체가 훗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칼을 빼는 것이 나를 만족시킨다는 것, 나의 손목이 위험할 정도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이것을 증명한다.”고 썼던 자신의 반시대적 고찰(Die Unzeitgemäßen, 캠브리지대 출판부가 출간한 이 책의 영역판 제목은 잘못된 시간의 명상Untimely Meditations”입니다)에 대한 스스로의 해설에서 의미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유에 대해 공적을 많이 쌓는 것같이 보이면 보일수록 그는 그만큼 위험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로베스피에르의 말과 나의 손목이 위험할 정도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니체의 말은 같은 핵심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단지 방향과 힘을 어느 쪽에 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 이상을 보여줍니다. “위험스러운위험할 정도로는 아직까지는 실제 위험이 아니지요. 두 사람은 자유라는 말의 자율성에 서로 다른 이유로 전율하고 있습니다.

 

터부의 소유주와 시의 현재

 

우리는 좀 더 세심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적 자율성이 경험적 한계를 뚫고 나가 행동을 성취하는 도약의 순간에는 분명 이중성이 있습니다. 확연한 전복의 시대를 이중 삼중으로 살아본 사람들은 곧잘 혁명이 곧 독재가 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한다는 사실을 증언하곤 합니다. 저울의 팔이 급격히 한 쪽으로 기울자 곧 다른 쪽 팔이 깊숙이 내려갑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술을 빌려, ‘민주정체가 타락하면 참주정체가 도래한다고 썼지요.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참주 역시, 도가 지나친 욕망을 위험으로 간주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김수영은 그의 유명한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그레이브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가 문화 투쟁의 첨병임을 천명합니다. “그러고 보면 <혼란>이 없는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의 건설은,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가 없는 혼란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의 향수가 문화의 세계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징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발효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인 것이다.”

자유는 모두의 것일까요? 사회는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규율하는 이만이 이처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저는 국왕 폐하 만세!”김일성만세의 우회적인 참조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김수영이 뷔히너를 참조했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김수영은 많은 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여러 언어로 탐독했지만, 그러한 영향은 옥타비오 파스가 프랑스 시에 대한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에 관해 썼듯이, “텍스트적이라기보다는 효모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분위기를 의미했습니다. 우연히도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혁명의 시기에 가장 터부시되는 것으로 혁명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 폐하 만세!”우회적인참조점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행동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터부의 소유주와 화자의 겹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1792년 뤼실의 프랑스(아니, 어쩌면 1835년 뷔히너의 독일)1960년 김수영의 한국이 달랐던 것처럼 다른 것일 터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라는 터부는 혁명 이후 혁명 정부의 것이었습니다. ‘김일성만세가 한국전쟁 이후, 심지어 4월혁명 이후로도 남한 전체의 터부였던 바와 달리 말입니다. 뤼실은 뷔히너의 희곡과는 달리 실제로는 저런 방식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밀고를 당했지요. , 국왕 폐하 만세!”는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아는 뷔히너가, 이미 역사가 된 혁명 가운데에 새겨 넣은 자신의 목소리입니다. 혁명이 일어나고 40여 년이 흐른 뒤 재구성된 당통의 죽음은 혁명 당시의 현실이 아니라 1835년 뷔히너의 독일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미성과 세심한 쾌락주의가 서슬 퍼런 도덕의 위협적인 칼날 아래 머리를 드리웠던 혁명의 어두운 부분을 가리킵니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함께 혁명을 완수하고, 1년 반 만에 당통과 그의 친구들은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처형당했지만, 석 달 뒤 쿠데타가 일어나자 로베스피에르 역시 단두대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역사에 관해서는, 그 배경에 기대어 감동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만세가 김수영이 당면한 생짜의현실을 겨냥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말입니다. 그것은 혁명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혁명에도 불구하고 존속하고 있는 구체제를 겨냥합니다. 그에게 뷔히너의 상상이 덧입혀진 뤼실의 목소리(이미 이루어진 바를 아는 뷔히너의 목소리)를 기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러한 고민을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 자신이 외칠 것인가, 익명의 주체에게 이 문구를 양도할 것인가를요. 그렇지 않았다면 김일성만세에 따옴표를 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시의 제목을 잠꼬대로 고쳤다가 다시 원상복구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퇴짜 당하면서 게재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지면을 얻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자유인가. 참주나 로베스피에르의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유의 자율성은 위험하며,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인간 일반의 자유의지는 타율을 통해서만 발휘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에 의지해서 칼을 휘두르는 자의 손목은 자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동성을 통해 작동합니다.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손목은 성찰과 반성을 잊어버린 자동기계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처럼 규칙적으로 민중에게 모가지들을 던져줄수도 있고, 2공화국의 육법전서처럼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 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김수영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 만에 제2공화국을 일갈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의 김일성만세김일성 사망이후에 왔습니다. 그것은 고성이나 작렬하는 선전이라기보다는 따끔한 일침이지만, 단지 그 일침 속에 금기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봉쇄되었던 목소리입니다. 혁명은, 뷔히너가 사후(事後)에 그린 프랑스 혁명처럼, 처음에는 체제를 바꿀 뿐 아니라 터부도 극단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요? 일련의 사건들을 사후에 혁명이라고 명명할 때, 우리는 그 모든 터부들이 부단히도 지워져가는 과정 속에 우리가 여전히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터부를 만지는 일, 그것을 던지는 일은 자동화된(automatized) 손목이 아니라 자율하는(autonomous) 손목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자율하는 손목은 그것을 조금씩 건드려 밀 수도 있고, 밀어서 떨어뜨릴 수도 있고, 던져서 깨뜨릴 수도, 하나의 터부로 다른 터부를 때림으로써 모두를 부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규정될 뿐, 언제나 현재속에 있는 자율적인 개인들모든 언어들을 세심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 시인들은 그것을 언제나 집중(concentration)’ 속에서 살아냅니다.

강제수용소(concentration camp) 출신인 첼란의 말을 빌리자면, “시가 자기와 만나는 모든 것에 바치려 하는 주의력은 세세한 것에 대한, 윤곽에 대한, 구조에 대한, 빛깔에 대한, 또는 <경련><암시>에 대한 더욱 날카로운 감각은, 이 모든 것은, 내 생각에는 나날이 더욱 완벽해지는 기계들과 경쟁하는 눈[]이 얻어낸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시점을 모두 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집중입니다. 벤야민이 쓴 카프카 연구에 나오는 말브랑슈의 말을 인용하면, ‘집중은 영혼의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그러한 집중된 현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언명이 가능해지는 것일 터입니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글을 서술하는 도중 김수영과 뷔히너를 동시에 떠올린 것은 김일성만세국왕 폐하 만세!”, 시적 행동으로서의 공통된 특질 때문이었지만, 또한 동시에 첼란을 떠올린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합니다. 첼란은 표면적으로는 뷔히너 상 수상 연설 속에서 저 말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 위로 올라왔습니다만, ‘집중에 대한 집중 때문에 김수영과 곧바로 조우합니다. 두 사람 모두 수용소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첼란은 저 연설문을 자신의 양친을 가스실로 몰아넣었고, 자신을 강제수용소에 가두었고, 자신에게 상을 준 독일인들 앞에서 읽고 있습니다. 저 독일인 청중들은 집중이라는 말을 그가 왜 그리도 강조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4월혁명이 겨우 두 달여 지났을 때 2공화국! 너는 나의 적이다.”라고 일기에 적은 김수영이 제2공화국의 눈앞에 김일성만세를 내밀었을 때, 공화국은 그 의미를 눈치 챌 수 있었을까요? 앞선 인용문에 이어 첼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는 대화가 됩니다.--그것은 때로 절망적인 대화인 것입니다.”

 

숨돌림, -()

 

이제 들숨과 날숨을 지나 숨돌림의 순간이 오고 있는 듯합니다. ‘김일성만세국왕 폐하 만세!”는 데리다가 미친 짓이라고 부르는 윤리처럼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심한 듯 돌연히실행되었지만, 그러한 작열의 시간이 지나고 숨을 돌릴 시간이 오면, ‘현재속에서 적()은 수건돌리기 놀이의 술래처럼 언제까지나 자기의 자리를 남겨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일성만세김일성의 자리처럼, “국왕 폐하 만세!”국왕 폐하의 자리처럼 말입니다. 그 자리에는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습니다.

4월혁명 직전에 쓴 ...... 그림자가 없다에서 김수영은 사방에 편재하는 적에 관해 썼습니다만, 23일 뒤 이승만 하야 소식이 보도된 26일에 그는 명백한 적이 된 그놈’(이승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또 한 달 후에는 육법전서에 의지해 혁명을 바라는 자들과 그들에게 속고 있는 그대들”, 또 한 달 후에는 2공화국”, 또 게다가 몇 달 후에는 저항시”()...... 그리고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라는 전향기의 진담 반 농담 반 가면의 고백. 가볍게 보이는 이 고백은 뷔히너의 렌츠의 마지막 문장, “자신의 존재가 필연적인 짐처럼 느껴졌다.--이렇게 그는 계속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처럼 비애가 어려 있습니다. 적의 차례는 에게까지 돌아온 것입니다. 이 지속적으로 몸을 바꾸고 있는 의 적성(適性)을 훗날, 그는 다음과 같이 갈파합니다.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지금의 적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내일

내일의 적은 오늘의 적보다 약할지 몰라도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내일의 적으로 오늘의 적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1965. 8. 5>

1전문

 

그리고 몇 달 뒤 마지막 행의 자기 희화화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혹자들은 소시민의식이라고 부른, 뼈아픈 고백을 낳지요.

아마도 혁명혁명이라는 명명 과정까지를 포괄합니다. 그 공과의 해석까지를 포괄합니다. 적과 터부의 자리바꿈, 그 돌림노래가 자기 이름을 포함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 돌림노래의 세부를 때리고 어루만지고 와 이웃과 원수가 같은 울림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리하여 예외적으로 날짜가 표기 되어 있지 않은 1961년의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이라는 아름답고 설움에 찬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는 노래는 6년의 숨돌림 후에야 시인의 가슴속에서 현재하는 역사가 되어 변주되지 않았을까요? “간단(間斷)도 사랑/(...)/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대신, 불란서혁명의 기술/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시인을 통해 적대의 돌림노래를 확장하고 근사한 후렴구를 우리에게 선사해주었습니다. “복사씨와 살구씨가/한번은 이렇게/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경험, 각자의 적과, 절망적인 대화와, 자리를 바꾸는 적의 돌림노래와, 그것을 확장하는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멜로디와 조성과 리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은 저 피로한 생활을 시로 써내면서, 극복하면서, 거기서 피로를 결코 누락시키지 않았던 이 시인의 위험할 정도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목입니다. 시를 이행할 때 그의 손목은 그의 전체였으며, 언제나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재속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현재를 사는 시인의 자리는 늘 잘못된 시간에 있고, 잘못된 시간에 있어야 한다고 니체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만, 그 피로가 낳은 명상이 분명 그릇된 명상은 아닐 것입니다. 이 명상은 아직 계속 변주중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