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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4.11 전후

몇 년 만에 만났는지 모르겠다

신촌에서 밥을 먹었고, 12년 전의 이야기들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가버렸나.

그 동안 두 명은 미칠 뻔했고, 두 명은 미쳤으며, 그 중 하나는 미쳐서 죽었다.

그녀는 앞으로 20년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거시적인 시간관에 놀랐다.

나는 인생을 계획해본 일이 없다.

배워야겠다.

그녀가 끼고 있던 귀고리를 빼서 내게 주었다.

가끔 선배들의 너그러움에 놀란다.

바람이 무척 불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카페 테라스에서 한사코 바람을 맞으며 앉아 가끔 끊어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동안 자기가 구성되어온 맥락을 빨리 업데이트시켜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우리는 거의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나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이제 대중에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내 입으로 꺼내면서 분명히 발음했고, 내 귀로 들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도, 내가 대중에게 필요 이상의 환멸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대중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또 생각보다 아둔하다는 사실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가 포함된 무리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안다.

그때 자주 사용하는 수사법은 나만 빼고 전부 다 X’이다.

김어준이나 진중권이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똑똑한 자유주의자들이고, 이 둘의 이상(理想)은 경험주의에 입각한 영미 식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한 독일 식 사민주의처럼 훌륭하고도 멀다.

그래도 NL PD만큼 멀지는 않다.

NL PD만큼 촌스럽지도 않다.

이것만도 다행이라고 하자.


대중의 욕망은 때때로 가학적이라서 비범한 자들을 발견하면 처음에는 마음 속에 호의를 품고, 그 다음에는 사랑의 말을 부르짖으며, 나중에는 팬티를 벗으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모여 있을 때에 이런 일을 하던 예수 수난일의 군중과 마찬가지로, 흩어지고 난 뒤에는 모여서 했던 모든 일을 부인한다.

나는,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또 죽도록 경멸한다.

그들은 때때로 약간 더 나아지기 위해, 숨겨두었던 잔인성을 남김없이 끌어낼 때가 있다.

혼란으로 가득 찰 때, 곧 이성적 질서에 대한 평온한 희구가 수면 바로 아래까지 와 있을 것이다.

해 뜨기 직전처럼 추울 것이다.

빌라도를 이해한다.

유다를 이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리만 질러댄 유대인들을 이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짓을 저지른 군중을 이해한다.

예수만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슬픔의 깊이를 상상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한 그의 거대한 신념이 그의 죽음을 합리화할 수 있을 거라는 그 자신의 가설을 납득할 수 없다.

역사를, 역사의 물질적 총체인 우리들의 우둔한 증오와 열광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우리 자신의 끔찍함을, 그리고 종류가 다른 예수의 끔찍함을.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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