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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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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시집, <백치의 산수>, 민음사, 2016 백치의 산수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보니 이 집에 없는 사람이 살고 있구나괜히 문밖으로 나가 노크를 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고 신발 개수를 확인한다검은색과 푸른색 신발이 있고흰 신발이 하나 구겨져 있다 흰 신을 신고 잠깐 나갔다가돌아오자마자 검은 신발로 갈아 신는다 흰 신을 신은 자는 밖에 있는데, 흰 신이 말하려다 턱이 빠진 사람처럼나를 올려다본다 푸른색 신발 위엔 지난봄의 나비가 어른거린다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오니 더 먼 곳으로 나와 버린 기분이다문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선회하는 나비의 기침소리 공책을 펼쳐 어제 하려 했던 말을 적어 본다아무 말도 써지지 않는다검은 신이 뚜벅뚜벅 방으로 들어온다 허리를 구부려 신발을 신는다 굴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거나물속에서 기어나..
키스는 왜 두 번 반복되어야 하는가 키스 지은이 강정 상세보기 첫 번째 키스-인류학의 탐침 위에 그려진 크로키 이 시집에는 두 편의 「키스」가 있다. 그리고 「키스」와 「키스」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다. 앞장과 뒷장 사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키스는 잠시 쉬었다 계속된다. 우리는 ‘나’와 ‘너’가 어떻게 키스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키스 이전에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했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키스는 혀로 할 수 있는 말 아닌 말의 첫 번째 형태다. 물론 그것은 말보다 수고스럽다. 그러나 그 수고는 기꺼운 수고다. 키스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와 ‘그러고도 우리는 말할 수 있어요’라는 쌍방의 암묵적 합의가 이끌어낸 가장 가까운 상대와의 텔레파시의 시작이다. 그것은 착각과 오해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위험천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