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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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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속에서의 명상-어제의 일기 MRI/MRA 검사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검사였는데, 느낌은 20여 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소음이 크다면서 의사는 귀마개용 헤드폰을 씌워주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세심한 건지, 기계의 작동 때문인지, 몸이 닿는 부분이 따뜻했다. 여러 종류의 소음이 일정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대개 높고 낮은 한 종류의 소음(점점 음이 높아지는)과, '웅웅' 하는 소리와 '찌르르' 하는 소리가 함께 울리는 듀엣 소음, 심지어 이것에 다른 한 가지 소리가 합쳐져 트리오로 울리는 소음도 있었는데, 기계 안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았던 나는, 소음이 바뀔 때마다 그 충격을 되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반복되는 소리들을 '감상'하기까지 하였다. 그것들은 외계인이 몰고 온 UFO가 공중에 멈추어 ..
to mistymay 나는 왜 이제서야 내가 니체를 이해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마도, 을 네 번쯤 읽었던 열 다섯 살 이래로, '밝음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양 극단에 열광했던 것 같아. 아니, 이전에 내가 열광해왔던 것을 비로소 문자의 형태로 만난 느낌이었지. 하지만 그건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어. 그 때문에 나는 이 두 세계의 양립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양 극단 사이를 조울증 환자처럼 오가고 있었던 거야. 이제까지 나는 니체의 수사와 빛나는 금언들에는 감탄하면서 불쾌한 반-정치적 올바름의 언명들에는 주저없이 경멸을 보내고 있었거든.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중용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중용'이라는 객관적 자리 같은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통..
M62 언젠가 화성소년이 내게 물었지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한데 왜 어두운지 아세요? 이유를 분명 말해준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잘 살고 있니? 별들은 언제나 폭발하며 태어난다 (인간처럼 더러운 게 별이었을 리가 없어)
만우절 문과대 독서실 옆문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고 있으려니 교복 입은 신입생들이 모여들어 불량 고등학생처럼 침을 찍찍 뱉어가며 담배를 빤다.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온 예비군처럼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은 대번 자기가 '고딩'일 적에 얼마나 불량했던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물론 거개가 뻥이다. 그들의 무용담처럼 '야생마'로 살았더라면 여기서 이렇게 날라리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 학교의 교복들은 '쌔삥'처럼 날을 잘 세웠고 머리는 염색을 했거나 펑키하다. 여학생들은 스커트를 급히 줄여 입은 티가 난다. 남학생들은 모델처럼 날렵해 보이려 가슴을 펴고 연신 어깨를 털고 있다. 아무리 날라리인 척해도 어딘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보여야 한다. '진짜 날라리 고딩'의 생짜의 감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물론 없..
거듭 도착하는 편지 Your Horoscope for MARCH 06, 2008 A loved one might be away on a short journey of some kind, Orintorinco, leaving you feeling lonely and a bit down in the dumps. The only way to get around this kind of gloom is to keep yourself busy. Read, or visit a neighbor. If you've been thinking of trying your hand at writing this is the day to give it a try. Keep your mind busy and you'll find that your fr..
수도사와 짐승 사이 適度를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 들끓는 욕망과 무기력 사이에서, 그러나 '그럭저럭 어중간하게' 사는 것이 아니면서 적도에 부합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것, 거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 자신의 모든 행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ㅊㅁ형이 미얀마 스님에게서 얻은 깨달음도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는 우리들'에 대한 일침과 다르지 않았겠지; 그는 매일 아침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갔지만, 스님은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 따름이었다. "자네는 오늘 아침 방문을 나설 때 문고리를 오른손으로 잡았는가, 왼손으로 잡았는가?" 말하자면, 우리가 '무의식적 행위'라 지칭하는 것을 최대한 의식의 층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동시에 우리의 무의식적 행위들이 실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면서 ..
숭례문과 남대문 숭례문 화재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경각심과 동시에 모방 범죄들을 불러온 듯싶다. 그것은 TV를 통해 방영되는 충격적인 화면의 아찔한 (초)현실감이 어쩔 수 없이 불러들이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소문, 소문의 무시간적 확산은 즉각적인 (초)현실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개인의 규율과, 규율을 무시하고 무질서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없는 욕망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다. 숭례문의 '추모자들'은 '물리적으로 체화된 역사'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 아니라 마치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사람들처럼 공포와 연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에 대한 테러였던가? 그것은 테러였던가? 테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국가적 자존심'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되었다. SBS 8시..
누덕누덕 -한동안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았더니 어떻게 생각을 하는 건지 잊어버렸다. 한동안 일기라는 걸 적지 않았더니 어떻게 고백하는 건지도 잊어버렸다. 글이 허구라는 아이디어를 더 강하게 받아들였다면 나는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까? 솔직하게 써도 언제나 거짓말이 된다. 그러니, 애써 거짓말을 하는 것은 위대할 수도, 쉬울 수도 있겠다. 생각도 쓰기도 하물며 감사하는 마음도 연습이 필요한데 연습은 언제나 실전처럼 해야 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그러니까, 뭐가 뭔지 모르게 그저 열심히 하라는 거겠지. 중요한 건 연속성이 아닐까? 몸이 느끼는 감각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고 "맘만 먹으면 넌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날마다 기획과 실행을 연습시키는 신자유주의 처세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무엇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