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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문학 문단 밖에서는 관심도 없는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우리끼리 문학이 죽었네 살았네 빈사 상태네 좀비가 되었네 여러 견해들을 참으로 복잡하게 표방했었지... 그런데 그 역사적이고 보편적이며 미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은 한국문학과는 너무 먼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느새 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환유되어버린 한국문학은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 있네... 인류의 대표로서 쓰는 선후배 동료 은사들이 아직 적잖게 있는 걸 난 분명 알고 있는데... 한편, 모르쇠->부인->꼬리자르기->책임 소재 떠넘기기->비판이 쇄도하자 대리인이 사과의 제스처->조속한 대응 약속. 대표적인 진보문학 진영을 자처했던 출판사의 일련의 대처는 보수 정권의 메르스 임기응변과 너무 닮아서 소름끼친다. 문학과 한국문학 사이는 (아직도) 너무 먼가보..
학원 가기 싫은 날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모자관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는 유형이고 두 번째는 '학원 가기 싫은 날 엄마를 이렇게 저렇게 먹는' 유형이다. 아, 아니구나. 이 두 가지는 같은 유형인지도 모르겠다. 저 논란 속의 '동시'는 예술성의 수위 문제 이전에(여기에 관해 논하려면 시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영상물의 등급 심의에 관해 먼저 논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가학-피학적인 한국적 모자관계의 역학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생각난다고 다 쓰는 걸 예술성의 핵심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쓰여진 표현이 오직 금기 파괴적이어서 예술적으로 호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강제하거나 굴욕감을 주는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
(스크랩) 황현산의 김춘수론 시 언어, 의미와 이미지에서 자유로워라[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 (24) 사물이 된 언어 또는 무의미의 시수정: 2015.01.14 19:38등록: 2015.01.14 13:48공유하기공유하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트위터로 보내기네이버 밴드로 보내기인쇄하기화가의 물감·작곡가의 음표처럼시인의 언어는 용도가 아닌 사물의 외곽에 있는 순수한 존재염불 같은 시 쓰려한 김춘수의 작품관념을 억압하고 깨려한 것보다 무의미조차 의식 안한 시가 더 좋아김춘수 시인한국 사람들이 ‘사물로서의 낱말’이니 ‘사물로서의 문장’이니 하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김붕구 선생이 1959년에 번역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물을 ‘지시’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데 비해, ..
미감과 포만감 다른 많은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처럼 우리 동네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장이 선다. 아파트 단지에 서는 장은 먹거리를 사러 갈 곳이 없어서 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입구며 후문 쪽에 벌써 서너 개의 슈퍼마켓과 가게가 있고 어지간한 채소며 생선, 정육 등을 10분 거리 내에서 살 수 있으니, 아파트에 서는 장은 그보다는 무언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만족시켜주는 일종의 문화적인 것에 가까운 듯하다. 게다가 공산품이나 냉동식품이라면 몰라도 신선식품을 주말에 대형 할인마트에서 대량 구매하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수고를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오늘이 마침 장날이라 저녁에는 오징어무국이나 끓여볼까 하고 홍고추를 사러 나갔다. 전날 가게에서 다른 재료는 사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단골 가게에서는 상태가 별..
산토끼 집토끼 sketch from http://runrabbitrun.ca/1/previous/9.html 흔히 동시에 성취하기 힘든 두 가지를 모두 해냈을 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말한다.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였던 시절에 학교 사육장 철조망 사이로 배춧잎을 준 것이 살아있는 토끼에 대한 경험의 전부인 나로서는 토끼를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평지의 사육장을 돌아다닐 때 긴 뒷다리가 퍽 거추장스러워 보였던 기억만으로는 실감하기 힘든 일이다. 아마 한 마리를 잡는 것만도 만만찮은 일인가보다. 일과 사랑, 돈과 재미, 진보와 보수 등 한 곳에만 기운을 다 쏟아도 제대로 얻어내기 어렵거나 하나를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이런 난국을 기적적으로 타개해나가는..
대학교육 ‘혁신’ 유감 Budi Satria Kwan, 그러니까, 내가 철학과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가 재떨이를 던지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예반 때문에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겠다고 고2 겨울방학에 수학 문제집을 들고 남산도서관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에는 많고 많은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처음 보는 낯선 단어들로 세계를 다시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책만 모아놓은 방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한적하고 나른한 그곳에서 수학문제도, 풀기는 풀었지만, 중간 중간 집어든 이상한 책들에 씌어 있는 이상한 낱말들로 된 답 없는 이상한 문제들은,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창가 자리에 나를 붙들어두곤 했었다. 지금도 ‘공부’라는 낱말을 들으면 그 고즈넉한 겨울 저녁의 햇살이 혼곤히 비쳐들어오던 창가 자리를 떠올린다. 나는 아직도 공..
훌륭한 보통 사람 일전에 시인이신 은사님과 함께 했던 식사 모임에서 의정부 화재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더랬다. 맨몸으로 시민들을 구조한 간판 시공업자의 일화는 확실히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에 대해 한층 예민해진 사람들에게 일말의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초자연적인 영웅들을 그린 만화들은 저런 숨어있던 익명의 능력자를 목격한 창작자들에 의해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훨씬 더 깊은 불안과 걱정에 마주치기도 한다. 만일 우리 사회가 상시적인 안전 체계보다 보통 이상의 헌신도와 선의를 가진 익명의 훌륭한 보통 사람, 평소에는 뿔테 안경을 끼고 다니다가 위험 상황에서는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클라크 같은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잠재적인 우리 중 누..
자라의 짓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오늘 문득 떠올리다가 이 속담의 주인공에게 자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종일 궁금했던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보니 “고슴도치에게 혼난 범이 밤송이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북한에서 이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필시 이 속담은 경험을 통한 학습 효과라는 보편성을 전해주는 동시에 큰 범이 자신의 위용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가시 뭉치에 심리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자라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목을 움츠렸다 폈다 하는 것 말고는 자라가 할 수 있는 무슨 놀라운 일을 떠올리기 난감한 것이다. 남편은 자라가 분명 손가락을 물었을 거라고 했지만, 속담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