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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향수가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로 알려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가 아닌가 싶다. 한국전쟁 당시 그의 행적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불온한 시인으로 간주되어 1988년에야 비로소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으니, 40년 가까이 우리 문학사에서 정지용은 독자 대중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시를 즐겨 노래했던 가수 이동원은 10년 전 한 인터뷰에서 해금 직후 여의도 한 서점에서 정지용의 시를 읽고 노래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해금된 1988년은 올림픽 열기가 뜨거웠으므로, 백석, 이용악, 임화, 정지용 등 오늘날에는 한국 문학사를 논하는 데 있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문인들의 해금 조치가 있었다 하더라도 대중이 인지하기는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시가 우선 노래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의의가 없지 않다. 이 시가 노래로 만들어질 때 클래식과 팝의 만남을 매개로 했다는 점도 그의 시적 특성에 썩 부합하는 일이다. 정지용의 시가, 스스로 시론에 쓴 말마따나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기”(시의 위의(威儀))를 향하는 형식과 감성의 긴장을 통해 결벽에 가까운 언어 조탁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이처럼 엄격하게 고전주의적인 면모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필립 시드니 경과 셸리의 글의 제목을 인유하여 쓴 산문 시의 옹호에서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던 것이다. “우의(友誼)와 이해에서 배양될 수 없는 시는 고갈할 수밖에 없으니, 보아줄 만한 이가 없이 높다는 시, 그렇게 불행한 시를 쓰지 말라. 시도 기껏해야 말과 글자로 사람 사는 동네에서 쓰여지지 않았던가.” 정지용의 초기 시에 속하는 향수가 그려내는 멀리 집 떠난 청년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사랑이 깨끗하고 절제된 언어에 선율이 얹혀 전해질 때, 고향을 떠나 산업화에 주력해온 우리 사회 대중의 심금은 함께 떨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시가 주는 깊은 감동은 잘 빚어진 도자기 같은 세심하게 조탁한 시어들을 통해 음절 하나하나를 꼼꼼히 음미했을 때 수용자가 느끼게 되는 깊고 풍부한 맛의 잔향이 오래 지속된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얼핏 보면 그저 고향 농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읽히는 향수, 성장한 한 청년이 어린 시절의 자유분방함을 함부로 쏜 화살이라는 시구로 요약할 때, 또는 서리까마귀같은 자기만의 어휘를 만들어 서리가 내릴 철에나 뒤늦게 알에서 깬 초라하고 힘없는 까마귀의 적막한 울음소리를 마음속에 그리게 할 때, 고향과 유년이 단지 낙원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쓸쓸함과 다시 올 수 없는 서툴고 즐거운 장난의 시절을 결핍과 함께 오롯이 추억할 수 있어 감동적인 것이다. 적은 말로 구체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시는 가식과 불필요한 양념 없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지극하게 전해준다.


아마도 이 같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언어의 조탁은 그의 독서 경험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1902년생인 정지용은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고 장성해서는 일본 도시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니 그의 독서 경험들을 단순화시켜 생각하면 한시의 동양적인 간결함과 절제미가 이미지즘을 비롯한 당대 영미 모더니즘의 서늘한 감각과 만나 독특하게 결합했다고 유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어들이 보여주는 깨끗함과 투명함, 감상의 절제는 무엇보다 그가 지닌 인격적 이상(理想)이 가지고 있는 고상함과 우아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같은 인격적 이상은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낸 백록담에 수록된 시들을 통해 자연물로 대리되어 묘사되고 있으니, 장수산의 일절,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같은 시구에 드러나는 인고의 의지와 절도는 실상 그의 시의 특징인 투명함과 깨끗함에 대한 유별난 경사가 진술 형태로 고백된 듯 여겨진다. 종종 그의 시를 초기의 모더니즘과 후기의 동양적 미로 구별하는 비평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는 감정과 언어의 경제(經制)는 시적인 대상이나 그의 실제 삶의 환경을 넘어 목소리의 주인이 향하고 있는 인격적 이상을 그리도록 독자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인격적 이상은 그의 시심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던 시기에 쓰인 황마차의 퇴고 과정을 추적해보아도 그 단서가 드러난다. “황마차(幌馬車)”는 본시 포장마차의 일본식 표기라고 한다. 우리말에 섬세한 감각을 드러냈던 그가 일본어를 시에 그대로 썼다는 데에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시가 쓰여진 것은 그의 일본 유학시절이므로, 시인의 현실성을 살리는 데에는 억지로 우리말로 순화된 단어보다 실제로 사용하던 단어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이 시의 일절을 보면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롯가를 찾아가고 싶어. 좋아하는 코-란경을 읽으며 남경콩이나 까먹고 싶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처음 발표된 19276월의 조선지광에는 -란경馬太傳 五章이라 되어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마태오의 복음서 5장은 예수의 산상수훈 중 팔복(八福)과 의()에 관한 것으로, 인고와 절제, 절도를 강조한다. 청년이었던 시인은 그러나, 이 같은 직접적인 자기 노출의 단서 대신 남경콩과 어울리는 좀 더 생경하고 이국적인 경전의 이름이 시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쓴 카페 프란스에서도 우리는 청년 정지용이 식민지 엘리트 청년의 사무치는 자괴감을 얼마나 세련되고 짐짓 풍자적으로까지 그려내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이 시는 천연덕스럽게도 친구들과의 카페 나들이를 묘사하는 한편, 곳곳에서 그 비애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 서늘하고 도회적이면서도 페이소스가 가득한 시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이를테면 태생과 다른 곳에 있는 자신의 부유(浮游)하는 처지와 이를 삐딱하게 초점화하는 당대 분위기를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비뚜로 선 장명등으로 카페를 묘사함으로써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암시한다거나, 화자의 친구들을 비뚜른 능금(블레이크의 병든 장미를 떠올리는) “벌레 먹은 장미로 인유, 또는 은유한다거나,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같은 낯설고 감각적인 직유를 통해 서늘한 감성으로 독자를 장악한다. 독자는 이 구체적이고 풍부한 수사들을 통해 차갑고 가는 밤비 속을 걸어 일본도 조선도 아닌 프란스라는 이름의 카페로 감수성의 일시적 망명을 떠나 앵무새와 이국종 강아지에게야 비로소 농을 건네거나 자신의 처지를 잠시나마 토로하고 있는 한 슬픈 청년을 만나게 된다.


아이를 잃고 쓴 유리창과 같은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시의 절제된 감상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같이 그의 말수가 적은 비극미를 우리가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자기감정에 대한 거리 두기를 통해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산문에서 비극은 반드시 울어야 하지 않고 사연하거나 흐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로 비극은 묵()합니다.”()라고 쓰고 있으니, 그가 한()의 시인으로 불리우는 김소월과 동갑내기라는 사실은 시적 정한의 표현이 매우 대조적인 뛰어나고 단단한 두 시인의 스타일이 식민지의 비자발적인 근대화 환경 안에서 동시적으로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이 시집에 실리지는 않았으나 갈매기야, 갈매기야, 늬는 목으로 물결을 감는다, 발톱으로 민다./물속을 든다, 솟는다, 떠돈다, 모로 날은다./늬는 쌀을 아니 먹어도 사나? 내손이사 짓부풀어졌다.” 같은 속도감 있고 천연덕스러운 페르소나를 내세운 갈매기, “말아, 다락같은 말아,/너는 점잖도 하다마는/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말아, 사람 편인 말아,/검정콩 푸렁콩을 주마./*/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같은, 사람 마을에 잘못 태어난 후이넘(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인격체로서의 말)에게 말을 거는 듯한 다정 깊은 시 , “별똥 떨어진 곳,//마음해 두었다//다음 날 가 보려,//벼르다 벼르다//인젠 다 자랐소.”라고, 누구나 공감할 성장의 예기치 않은 속도와 지나버린 동심에 대한 애도를 동시풍으로 노래한 별똥같은 시들 역시, 시인의 천진하고 섬세하고 사랑 깊은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어 우리 마음에도 천진함과 섬세함과 사랑을 다시 불붙인다.


감성으로 지성으로 의력(意力)으로 체질로 교양으로 지식으로 나중에는 그러한 것들 중의 어느 한 가지에도 기울리지 않는 통히 하나로 시에 대진(對陣)하는 시인은 우수하다. 조화는 부분의 비협동적 단독 행위를 징계한다.”(시의 옹호)고 시인 자신이 썼거니와, 이 같은 그의 전일론(holism)은 시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시와 문학을 포함한 삶 전체에 대한 태도로서도 타당하지 않을 리 없다. 삶이 불가피하게 비극을 안고 있을 때, “나의 영혼의 윤곽이 올빼미 눈자위처럼 똥그래질 때”(), 그의 ()한 비극미는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삶의 절도를 깨우친다. ()

-<정지용 시선>(아시아출판사, 2018)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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