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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영화와 문학

그녀는 요리를 멈추지 않았다 : 「요리사와 단식가」와 <301․302>

 

 

자연의 목소리와 같은 에고이스트는 없어. 자연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모든 타인을 희생할지라도 알아서 쾌락을 구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성스러운 견해야.

- 프랑수아 드 사드

 

금욕적인 수도자들은 비범해진다. (...) 그들은 다르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다른 곳에 있기를 갈망한다. (...) 다른 곳에 다르게 있기를 소원함에 담긴 위험성은 이 소원이 완전하게 실현될 가능성에 있다.

- 마크 에드먼슨

 

왜 증상은 멈추지 않는가?

- 자크 라캉

 

 

1987년 부근

 

넥타이 부대가 시청 앞 광장을 행진하던 1987, 60년대산() 젊은 시인’ 장정일은 이 정치적 사건보다 몇 달 앞서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을 출간하고, 이어 김수영문학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되면서 문단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시집은 당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진영 양자에서 공히 표방하고 있었던 소위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표방하는 대신 모종의 무정부주의적인 견해를 제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햄버거>에 실린 시 빈 껍질에서 그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 주어를 내세워 “세계는 텅 빈 껍질에 불과하지 않은가”라고 일종의 세대론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실과 시대 이래 자라난 우리는 망명 세대”, “내 십자가엔 그리스도가 없”고 “아무데나 입당원서를 내팽개치고/회전반에 판을 건다”. 정치는 사망 선고를 받고 취향이 깃발을 들기 시작했다. 그는 386 세대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여러 측면에서 그들과는 현저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세간에서 추측하고 있는 바로는, 그에게 ‘학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추측은 어쩌면 일정 부분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사회 전체의 지식인 콤플렉스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반증하는 징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학번이 없다는 것은 그의 특장점이기도 했다. ‘작가=지식인’이라는 등식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강요된 사회적 고민들로 부채의식에 시달리거나, 노동자, 농민, 여성 등과 같은 계급이나 젠더 상의 정체성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폭로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잉여’로서의 실제 체험과 광범위한 독서를 통한 추체험에서 비롯한 과격한 날것의 상상물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통찰적으로 다루었다. 80년대 문단을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사회과학주의는 기실 넥타이 부대와 친족관계에 있었으니, 그의 외설성은 어쩌면 그 같은 ‘역사’와 ‘정치’와 ‘사회과학’ 담론들로부터 선회하여 이후 오랫동안 도래할 ‘문화’의 폭발적 개화를 예고하는 때 이른 선언으로서의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90년대에 들어서자 그가 쓴 소설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때마침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 콘텐츠들에 대한 정부의 검열 약화,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지적 풍토의 점진적인 강화 국면이라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작품들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자극과 극적인 성격이 안성맞춤으로 맞아떨어졌던 것은 어쩌면 작가로서는 행복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때때로 위장된 엘리트 중심주의와 역사 중심주의적인 80년대 의 사고방식이, 역사주의 자체가 행사하는 잉여적 개인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인식으로 바뀌는 과정에 무시할 수 없는 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90년대는 지난 시기에 꼼짝없이 역사주의에 갇혀 있던 개인들이 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거대 담론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가져온 상실감에 대한 기나긴 애도가 시작하는 시기였다. 1988, <길안>에 이어 출간된 또 다른 시집 <서울에서 보낸 3주일>의 말미에 해설이나 발문 대신 실린 그 자신의 산문 혹성탈출-8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나타난 낭만주의 열망이라는 글은 80년대 시인들의 도저한 부권 찬탈에 대한 열망 자체가 그 자신에게 어떻게 강압적인 부권으로 작용했는가를 시사한다. 그는 ‘낭만주의’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외연을 지닌 개념을 통해 80년대의 시적 정서가 지닌 공통적인 특질들을 짚어내어 거칠게 비판하면서 1930년대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폄하하고 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비판하고 있는 ‘낭만주의적 특질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신의 작품들만큼 잘 적용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타자로부터 그 자신만큼 강력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만큼이나 애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